94. 방언의 은사가 사도들의 입에 임했는가 아니면 청중의 귀에 임했는가?
오순절날 언어와 풍습이 서로 다른 전 세계 15곳 이상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사도들이 각각 다른 나라말로 설교를 했는가? 아니면 사도들은 이스라엘 말로 설교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각각 자기 나라 말로 들었는가? 즉 방언의 은사가 사도들에게 임했는가? 아니면 청중의 귀에 임했는가?
A. 흔히 제자들은 이스라엘 말로 설교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각각 자기 나라 말로 들었다고 생각한다. 즉 청중의 귀에 방언의 은사가 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기를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으며 제자들이 갈릴리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된 것에 대해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이 갈릴리 사람임을 강조해서 그들이 각각 다른 방언을 말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이 제자들을
“새 술에 취하였다” 라고 조롱한 것을 봐서 방언의 주체가 청중이 아니라 제자들임을 알 수 있다.
B. 베드로 혼자 이스라엘 방언으로 설교하면 모든 사람이 각각 자기들의 방언으로 알아듣도 록 그들의 귀에 방언의 은사를 주시는 것이 편리 할텐데 왜 제자들이 각각 다른 말을 하도록 하셨을까?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주체를 확실히 구분하여, 제자들에게 성령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쪽은 청중이 아니라 제자들이었다. 성령의 역사가 누구에게 임했는가를 확실하게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셨다. 그래서 제자들 자신들이 그들에게 임한 성령의 은사를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간접 체험으로가 아니라 직접 체험을 한 것이다.
(2) 만일 제자들이 이스라엘 말로 설교하고 청중이 각각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들었다면 신기한 현상이기는 해도 제자들에게는 어떤 권위도 돌아가지 않는다. 제자들의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인 제자들이, 배운 일이 없는 15가지 이상의 방언으로 설교하자 다 놀라고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임이 확실해졌다. 그러므로 그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해졌다.
오순절의 방언 현상은 흔히 오해하는 대로 청중들의 귀에 임한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함을 입은 제자들에게 직접 임한 것이다. 즉 제자의 입에 방언의 은사가 임한 것이다. 베드로가 아람어로 말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 말로 알아듣도록 하는 것보다 불편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각각 다른 방언을 말하도록 한 성령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주체가 청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임을 분명히 밝혀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권위를 주고 또 제자들에게 성령의 은사에 대한 확신과 깊은 신앙의 체험을 주기 위하여 그렇게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