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나타난 구원 시편 11편 하늘이 보증하는 공의
 시편 11편 (142.1)
 이 시는 긴장 상태에서 지어졌다. 다윗의 생명은 불량배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부 고위 관료에 의하여 점점 더 위협을 받고 있었다. 친구들은 그에게, 목동 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던 산속으로 피신하여 은밀한 곳을 찾을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다윗은 두려움에 의한 이끌림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그에게 기름 부으신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했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1절)다고 하는 고백은 그가 피난처를 찾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소로 가려고 계획했음을 암시한다. 이 시는 전반적으로 성전을 하나님께서 예언적인 신탁을 통하여 당신의 핍박받는 종의 불만에 응답하는 도피성 또는 은신처로 간주하는 듯하다. 다윗의 시는 이스라엘 안에 있는 의인과 악인 사이를 예리하게 비교하는 것으로 특징 지어진다. 하나님과 진실한 백성들에 관해 그가 사용하는 중요한 단어는 “의”이다. 반복적이며 점진적인 문장 전개 방법은 모종의 긴장을 고조시키는데, 그것은 극적인 절정의 순간에 해결되고 만다. (143.1)
 비록 그를 죽이려는 사울의 노력(삼상 18~20장)과 압살롬의 반역(삼하 12장)이 다윗의 아슬아슬한 상황적 현실을 지적해 주기는 해도 다윗의 생애에 대한 세세한 역사적 사건을 정확히 나타내 주지는 못한다. (144.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시 11:1~3)
(144.2)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의 대적은 “악인”으로 불리운다(2절). 그들은 매복해 있다가 공격한다. 그들은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 것이다(2절). 다윗의 생명 뿐만 아니라 그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의인들—모두가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 하나의 집단으로서 언약의 백성이 갖는 도덕적 근거—율법과 정의—가 위태롭게 된다. 바야흐로 다윗의 동료들은 절망 가운데서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3절)라고 외치고 있다. (144.3)
 정부의 입법부가 부패하여 사회 안녕 질서를 다루는 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면 “땅의 모든 터가 흔들”(시 82:5)리게 된다. 그러나 무질서가 언약의 공동체를 위협할 때마다 이스라엘의 시편은 이에 낙담하지 않고 야훼께서 이 세상의 최고 왕—재판장이심을 지적해 줌으로써 미래의 소망을 안겨 주는 것이었다. (145.1)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지라
저가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리라”
(시 6:10)
(145.2)
 그 두려움에 떠는 동료들에 대한 다윗의 진정한 대답은 위기의 순간에 미래에 대한 영속적인 소망의 기별을 담은 가장 의미 있는 위로 중에 하나가 된다. (145.3)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시 11:4~6)
(145.4)
 이 영감적인 말씀은 분명한 기별이다. 하늘에는 이 땅을 돌보시고 이곳에 공의를 가져 오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인간은 도의적 우주 가운데 살고 있음이여! 인간은 결코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저버릴 수 없다. 영원한 운명이 눈앞에, 종말론적 상황이 최후의 심판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다. 다윗은 그의 눈길이 땅의 혼돈으로부터 돌이켜 “그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께로 미치자 미래에 대한 새로운 용기를 갖게 된다. 하나님이 현재 이 시간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 계시다고 하는 확언은 계시적 의미로 충만해 있다. 이 확언은 하늘이 이 땅에 공의를 행사할 것이라는 확신이 설 때까지 다음 구절에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당신의 언약의 백성이 살아남을 것임을 완전히 보증하고 계시다. 그 대법관은 당신의 하늘 보좌에서 졸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인간사에 무관하시거나 이 땅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의 운명을 방관하지도 않으신다.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4절). 하나님의 안목의 규모는 우주적이다(시 66:7; 대하 16:9; 슥 4:10 참조). (146.1)
 이 말씀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야훼는 민족주의적 하나님이 아니다. 당신의 눈길은 살펴보실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모든 인생들을 감찰하고 계시는 것이다. 다윗은 다른 시에서 이것을 좀더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146.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들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14:2)
(147.1)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시 33: 13~15)
(147.2)
 하나님의 모든 눈이 당신의 백성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으로 굽어살피심을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147.3)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시 34:15) (147.4)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확신을 통해 용기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도처에서 인간 사회를 침식하는 부정과 비리를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 대체로 하나님께서는 이 일들에 즉각 반응하시거나 개입하시지는 않는다. 단지 회개의 기회, 당신 앞으로 되돌아올 시간을 허락하시고 계신다. 물론 악인들은 자신들의 일시적 번영의 시기를 이런 빛 가운데서 해석하지는 않는다. 선은 보상받고 악은 보복당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 데는 영적인 빛이 필요하다. (148.1)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인이 백 번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내가 정녕히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경외하는 자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 앞에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전 8: 11~13).
(148.2)
 이 진리가 시편 11편에서는 시적 형태와 극적인 열정으로 펼쳐져 있다. 하늘에 계신 주님은 이 땅의 불의와 인간의 고통을 신령한 방관자로서 내려다보시지만은 않는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그들이 의인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악인에 속한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시험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속되는 하늘에서의 조사 심판은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매우 의미 심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시간표에 따라 심판을 행사하실 것이다. (148.3)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시 11:6)
(149.1)
 이 단어들을 택한 것은, 악인은 결국 소돔과 고모라가 당했던(창 19:24 참조) 것과 유사한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사도 베드로도 창세기 19장의 사실을 모든 시대의 무법(無法)한 사람들의 운명에 관한 경고의 본보기로 생각했다. (1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