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음성과 함께 첫째 재앙이 시작된다. 세째 재앙 다음에 또 한 차례 하늘의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여섯째 재앙의 중간에 다시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으며 뒤이어 일곱째 재앙이 내렸다. (422.1)
서두부터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계 16:1)하였다. 이 음성은 성전에서 들려 왔다. 네 생물 중 하나의 음성일런지 모른다. 우리는 4장에서 생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었으며, 6장에서는 처음 네 인을 뗄 때마다 네 생물이 우리를 청하여 “오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 (422.2)
아니면 이 하늘의 음성은 어린 양의 음성일런지도 모른다. 요한계시록 6장 15~17절에 보면 악한 사람들이 산과 바위를 향해 “어린 양의 진노”로부터 자신들을 막아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422.3)
그렇지 않다면 이 하늘의 소리는 하나님 자신의 음성일런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바 하나님과 예수님은 형언할 수 없으리 만큼 친절하시고 고마우신 분이시다.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이미 227~228페이지에서 확인했고 또 462페이지에서 확인하겠지만 죄 없는 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랑은, 악을 끝내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의 고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염려하시고 돌보시는 분이시다. (422.4)
그리고 천사들도 우리를 염려하고 있다. 그들은 사단과 그의 무리가 한 편을 이루고 그리스도와 그의 무리가 한 편을 이루어 싸워 온, 수세기에 걸친 대쟁투를 계속 지켜보아 왔다. 그리고 그들은 잔인한 자들이 선량한 자들에게 가하는 잔학 행위들을 목도하면서 치를 떨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진실한 사람들의 시련을 종식시키시는 그 날을 학수 고대해 왔다. (422.5)
공의와 공정한 승부에 대한 이들의 갈망을 이해해야 요한계시록 16장 5, 6절에 나오는 “물을 차지한 천사”의 노래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천사는 “강과 물 근원”에 대접을 쏟았으며 그것들이 “피”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 천사는 이러한 형벌이 합당함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환호의 노래를 부른다. (422.6)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는 거룩하신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422.7)
요한은 이상 중에서 이 일들을 보면서 심지어 제단까지도 뭔가 할 이야기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한계시록 6장 9~11절에서 순교자들이 “제단 아래”에 있다고 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이 제단은 1,260년의 대환란 기간에 자행된 무서운 박해들과 그 외의 기간에 있었던 여러 가지 박해 등 수없이 많은 고통들을 지켜보았다. 이제 이 제단도 7절에서 물의 천사와 함께 세째 재앙을 환호하며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422.8)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423.1)
그리스도가 오신다!
세번째 들려 온 하늘의 소리는 의심할 나위 없이 그리스도의 음성이다. 그 음성이 말하기를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계 16:15; 3:3)라 하였다. (423.2)
“도적같이” 온다는 뜻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처럼 예수님이 은밀히, 눈에 안 띄게 온다는 뜻이 아니다. 도적이라고 해서 항상 은밀하게 소리없이 남의 집을 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성벽을 허물고 천정을 뚫고 소란스럽게 쳐들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은행 강도들은 가끔 백주에 내놓고 범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423.3)
그리스도의 선언은 고무적이다. 그는 그의 백성들을 잊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그의 백성이며 이제 그는 그들을 위해 오시는 것이다. 이는 또한 하나의 진지한 경고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423.4)
요한계시록에서는 옷이 성품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는 의로운 성품을 나타내고 있다(계 3:18; 7:14, 19:8).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꾸준히 그를 믿고 순종하는 신자들은 최후의 승리와 기쁨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은 감람산 설교에서 말씀하시기를,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 13)고 하셨다. (423.5)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계 16:17, 18).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과 굴욕의 일생을 마치실 때, 그는 “다 이루었다”고 승리의 외침을 외쳤다. 이제는 그의 백성들의 고통과 굴욕이 끝날 때가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는 벅차오르는 안도감과 만족감으로 “되었다(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것이다. (423.6)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도 기쁨으로 응답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천사들이 “소리”치며 “뇌성”이 울린다. 일찌기 유례가 없을 만큼 큰 지진이 진동한다. (423.7)
일곱 재앙과 일곱 나팔
이미 앞에서도 여러 번 확인했듯이 일곱 재앙과 일곱 나팔 사이에는 너무나 현저한 유사성이 있다. 두 경우에 있어서 동일하게 앞의 넷은 땅, 바다, 강, 샘, 그리고 천체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두 경우 공히 다섯째는 어둠과 관련되어 있으며, 여섯째는 유브라데 강과 관련되어 있고, 일곱째는 한 큰 음성이나 큰 음성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하여 일곱 재앙은 일곱 나팔과 동일한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었다. (423.8)
그러나 좀더 세밀히 관찰해 보면 오히려 그 둘 사이의 차이점이 유사성이 보다 더 크고 무겁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컨대 첫째 나팔이나 첫째 재앙이 모두 땅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첫째 나팔은 “땅의 삼분의 일”과 “수목의 삼분의 일”과 “각종 푸른 풀”을 태웠지만, 첫째 재앙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악하고 독한 헌데가 나게”(계 8:7; 16:2)하였다. (4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