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의 기간은 일곱 재앙이 내리기 전에 끝난다. 왜냐하면 일곱 재앙이 내리기 시작한 이후의 회개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재림 전(前)에 심판의 시기는 끝날 것이며, 은혜로우신 우리 구주는 그 앞서 모든 진실한 심령들을 인치시고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을 간직하심으로써 구원을 위한 인치는 작업을 모두 마치실 것이다. 우리의 속마음을 낱낱이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도성에서의 생활에 오히려 불편을 느낄 만큼 사랑이 없고 성의가 없는 사람들을 알고 계실 것이다. (441.6)
 잘못은 다른 어떤 사람들이 아닌 바로 그들 자신들에게 있었음
 대홍수가 시작되기 한 세기 전에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결코 그 세대에게 전제적으로 그 생존권을 거부하신 것이 아니다. (441.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 그런데도 하나니은 그들에게 자비로운 약속을 하시어 “그들의 날이 일백 이십 년이 되”(창 6:1~8)게 하셨다. (441.8)
 120년 동안 하나님의 “의을 전파하는”(벧후 2:5) 노아는 수명이 긴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악한 길을 떠날 것을 호소하였다. 하나님의 은혜의 초청이 거듭하여 거절된 이후에 하나님은 부득불 노아의 식구들만을 방주에 들어가게 하셨다. 그리고는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셨다(창 7:16). (442.1)
 방주의 문이 닫힌 후로도 7일 동안이나 날씨는 평온을 유지했다. 동물들과 방주 안에 들어가 있는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을 희롱하는 군중의 아우성이 어떠하였을까? 7일이 지나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감정은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다(창 7:10). (442.2)
 이 비극의 책임은 바로 그들 자신들에게 있었다. (442.3)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는 드디어 예수님 당대의 유대인들을 향하여 최후의 선언을 하셨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 23:38). 예수님은 결단코 그들의 집(성전)을 버릴 마음을 갖고 계시지 않았다. 그는 그의 임재로 그 집(성전)을 영화롭게 하시려고 하늘로부터 오셨다. 그를 배척한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요 1:11)다. (442.4)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전이 황폐하게 되었다고 선포하셨을 때 하늘로부터 번개치는 일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제사 의식은 예전과 다름없이 성전에서 계속되었다.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은 그들의 순번을 따라 날마다, 일주일마다, 혹은 일년마다 희생 제물과 피뿌리는 일과 할례 주는 일과 검역하는 일과 성결케 하는 일과 축복 비는 일을 이행했다. 합창단은 노래하고 사람들은 오고 갔으며, 해는 떳다가 지기를 계속했다. 오직 영적 식별력이 비범한 사람들만이 예수님의 불길한 말씀들이 모두 진실이며 이제 그들의 집은 황폐되어 버린바 되었음을 깨달았다. 거의 40년이 지난 후 로마의 군대가 쳐들어왔는데 이 때에야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다. (442.5)
 그리고 이러한 사태의 책임은 다름아닌 바로 그들 자신에게 있었다. (442.6)
 호세아 선지자도 언젠가 다음과 같이 슬픈 운명을 선언하였다. “에브라임은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호 4:17). (442.7)
 예수님의 열 처녀 비유에 나오는 미련한 다섯 처녀는, 사용할 등불을 위해 충분히 기름을 예비해 두지 못했다가 경황 중에 결혼 식장을 찾아갔으나 이미 문은 닫혀 있었다(마 25:1~13). (442.8)
 예수님은 성령을 거스린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마 12:33). 성령은 우리에게 지은 죄를 깨닫게 해주며 회개하여 변화된 사람이 되도록 격려해 준다(요 16:8). 그러나 만일 우리가 고집스럽게 성령의 감동을 거부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를 존중할 수밖에 없으시다. “나의 신(성령)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당신의 성령을 사람들로부터 거두시며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죄로 인하여 고민하는 일이 없어진다.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했으니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442.9)
 의로운 자는 계속 의를 행하게 하라
 그러나 요한계시록 22장 11절에는, “불의한 자는 계속 불의를 하게 하라”고 선언하게 되는 순간이 올 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고무적인 선언을 하신다고 하였다. (442.10)
의로운 자는 그대로(계속해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계속해서) 거룩하게 하라.
(442.11)
 마지막 때에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고 사단의 성품을 닮기로 결정하겠지만, 또 다른 수백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빛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호소에 응답하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들의 생활의 방향을 재정립하여 하나님의 진리 안에 확고히 정착한다. 아무도 그들을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떼어 낼 수 없다. “용”“짐승”도 그리고 “거짓 선지자”도 설득과 기만, 회유와 위협으로써 그들의 태산 같은 결의, 즉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사랑과 정직과 진실과 공의에 서려는 그들의 결의를 무너뜨릴 수 없다. (443.1)
 낡은 성전을 황폐된 채로 두고 떠난 성령은 오순절의 능력으로 한 그리스도인의 집단에 임하셨다. 이들은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려고 작정한 진실한 기도의 집단이었다(행 2장). (443.2)
 이러한 일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영적으로 바벨론화한 교회들과 그 신자들에게서 떠나 기도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 위에 오순절의 능력으로 내릴 것이다. 마음을 다하여 그들의 주님을 믿고 순종하려는 노소의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성령이 내릴 것이다(욜 2:28~32; 행 3:19). (443.3)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은 환난을 이긴 승리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성품)을 지닐 것이다. 그들의 맑은 시선과 안정된 미소는 심령의 내면에서 불타고 있는 신앙과 고결성을 나타낼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때 그들은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할 것이고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을 것이다. (4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