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국(帝國)
 다니엘와 요한계시록에 현저히 나타나고 있는 제국들 위에 애굽과 앗시리아 같은 제국들을 추가시키는 문제는 마땅히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니엘의 예언들은 요한계시록 해석의 열쇠를 쥐고 있다. 다니엘는, 바벨론과 바사(페르시아)와 희랍과 로마 제국에 대해서는 논하고 있지만 애굽이나 앗시리아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의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468.1)
 요한계시록 17장의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의 표범 같은 짐승과 동일한 것이다. 이 둘은 모두 물을 딛고 서 있으며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다. 요한계시록 12, 13, 17장에는 네 개의 상징적인 동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곧 용과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는 짐승, 표범처럼 생긴 바다 짐승, 그리고 주홍 빛깔의 바다 짐승들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6장 13절20장 13절은 오직 세 짐승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데 곧 “용”(또는 마귀), “거짓 선지자”(어린 양같이 두 뿔을 가진 동물), 그리고 “짐승”(“짐승들”이 아니다)이다. (468.2)
 용과 짐승은 모두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으며 이 둘은 교회—국가적 박해 정신을 상징하는 동일한 존재이다(교회—국가적 박해는 요한계시록의 중심적 관심사의 하나이다). 그들의 일곱 머리는 일곱 겹으로 이어지는 탄압적인 정부들의 진행에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1) 용은 비그리스도교적 박해에 특별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으며,

 (2) 짐승은 옛날 가톨릭 식의 박해에 관심을 촉구하며,

 (3)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는 짐승은 용과 짐승처럼 박해의 정신을 갖게 된 마지막 시대의 개신교 식 박해에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468.3)
 “짐승” 그 자체도 그 시기가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표범 같은 모습의 시대(요한계시록 13장의 시대)는 중세 시대의 박해에 관심을 요청하고 있으며 주홍 빛깔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시대(요한계시록 17장의 시대)는 첫째로, 심판의 시간이 시작될 무렵의 그 쇠약한 상태에 주의를 촉구하고 있으며 두번째로는 재림 직전의 짧은 기간에 극적인 양상으로 재현될 옛날 가톨릭 식의 박해에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468.4)
 3. 언어상의 표현
 머리, 뿔, 음녀, 짐승을 해석하는 세번째 지침은 요한계시록 17장에 사용된 언어 표현의 일부가 다소 신축성 있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8절에서는 짐승이 “시방(지금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천사로부터 이 말을 듣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시선은 요한의 눈을 통해 짐승을 향하고 있다. 우리는 이 짐승이 잔등에 큰 음녀를 태우고 물을 딛고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68.5)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열 왕도 12절에서는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1절과 2절에서는 이미 이 열 왕이 음녀와 더불어 음행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천사는 말하기를 “이리 오라 내가∙∙∙큰 음녀를∙∙∙네게 보이리니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다고 했다. 따라서 그들은 분명히 한때 왕권을 누렸다. 13장을 보면 이 왕들이 1,260년 동안 권세를 누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잠시 후에는 그들이 다시 “임금처럼 권세를” 갖게 될 것이며(의심할 나위 없이 전제적인 국가들이 될 것이다) “일시 동안” 짐승과 더불어 통치할 것이며(12절), 그 기간에 그들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울” 것이고(14절) 음녀와도 싸울 것이다(16절). (468.6)
 이와 같이 짐승은 이전에 그가 어떠했음에 비교해서 말할 때, 그리고 장차 그가 어떠한 존재가 될 것인가에 비교해서 말할 때, “지금(시방)은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왕들에 대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진실이다. 어법상 이 왕들은 어떤 의미에서 미래의 얼마 동안 엄청난 압제적 권세를 휘두를 것에 견주어서는 아직 그 권세를 잡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점에서 본오므 리처드(Bonhomme Richard)호의 함장 존 폴 존즈(John Paul Jones)와 같다. (468.7)
 미국의 모든 국민학교 아동들도 익히 알고 있는 바와같이 존 폴 존즈 함장은 이미 영국의 프리깃 함(艦) 세라피스 호와 교전 상태로 돌입해 있으면서도 “나는 아직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외쳤던 것이다. 그는 실상 이미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가하려고 의도하는 타격에 비추어 볼 때 그는 아직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던 것이다. (469.1)
 여덟번째이지만 실상 일곱번째인 짐승
 “여덟째 왕” 이면서 “일곱 중에 속하”였다는 이 짐승은 어떤 짐승인가?(11절) (469.2)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짐승은 여덟번째의 머리가 아니다. 짐승은 어디까지냐 짐승이고 일곱 머리가 전부 짐승에 속해 있다! (469.3)
 일곱 수를 모두 더했을 때 나오는 수가 여덟번째의 수이다. 그러나 이 여덟째 수는 일곱에 속한 것이다. 여덟번째 수는 합계이며 다른 수들의 내용인 것이다. (469.4)
 짐승의 머리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므로써 짐승의 몸 전체가 심각하게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리고 머리의 상처가 나음으로써 짐승의 몸 전체가 치유된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계 13:3, 12, 14). (469.5)
 짐승의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을 때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는 그 경쟁자가 장면의 전면 중앙에 등장한다. 짐승은 이제 무대에서 밀려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에 있어서 새끼 양같이 두 뿔 달린 동물은 짐승을 도와 다시 무대로 돌아오게 한다. 짐승은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권력을 잡는다. 이것이 일곱째 머리로 상징되었다. (469.6)
 앞서 말했던 세 규칙들을 여기에 적용해 보자. 그 중 “망한” “다섯”을 포함한 일곱 머리에 대해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1) 바벨론,

 (2) 바사(페르시아),

 (3) 희랍,

 (4) 로마 제국,

 (5) 기독교 로마가 그들이다. 요한의 묵시에 나타나는 시대인 1798/1844의 “심판”의 때에 이르러서는 기독교 로마(로마 교회)가 “죽게 된 상처”로 말미암아 중병을 앓고 있다. 이 때가 바로,

 (6) 여섯째 머리의 시대이다. 즉 여섯째 머리는 상처 입은 기독교 로마(로마 교회)이다. 이 때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가 유례없이 확고했던 시대이다. 마지막 머리 즉,

 (7) 일곱째 머리는 다시 소생된 기독교 로마(로마 교회)이다. 이로써 짐승의 몸 전체(즉 여덟째 머리)가 최후로 자기 실현을 완성하게 된다. “열 뿔은”은 한때 유럽의 비관용적인 국가들을 상징했는데 이제는 다소 관용적인 민주 국가들을 상징한다. 미래에는 열 뿔이 잠정 기간 동안 비관용적인 전제주의 국가로 행세할 것이다. (469.7)
 짐승과 음녀
 요한이 본 짐승과 음녀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상징한다는 말을 이미 앞에서 했다. 이 주장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표범처럼 생긴 짐승과 17장에 나오는 붉은 색깔의 짐승이 너무나 현저하게 다르다는 사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17장에 나오는 짐승은 그 등에 음녀를 태우고 있다. 교회(음녀)와 국가(짐승)는 이제 서로 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분명히 구별된 실재로 나타나고 있다. (469.8)
 중세의 여러 세기에 걸쳐 유럽의 국가들과 교회는 너무나 서로 밀착되어 있었으며 또 상호 의존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복합적인 하나의 상징 곧 표범과 같은 짐승으로 특징될 수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중세의 역사를 사실상 교회사로 간주하고 있다. (4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