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0년 기간의 대부분에서 왕들과 제후들이 정치적으로 교황과 대립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교황권의 신학적 입장을 충성스럽게 강화시켰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1798년경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공화정의 등장과 함께 교회와 국가가 완전 분리된 것이다. 가톨릭 신앙은 부분적으로는 이같이 새로운 국가—교회의 관계 개념 때문에 외관상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계 13: 3). 그리고 미합중국이 세계 정상을 위하여 발돋음하기 시작했다. (469.10)
천사는 요한을 데리고 “광야”로 갔다. 앞에서 보았듯이 요한계시록 12장의 여인, 즉 하나님의 참된 교회가 1,260년간 광야의 고통을 감수했다. 이 여자(참 교회)가 박해를 당하는 동안 하나님이 그녀를 부양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17장의 음녀 즉 혼란한 교회의 박해 행위를 심판하시는 마지막 때에, 이 음녀 자신이 광야의 경험을 감수한다. (470.1)
이제 광야의 신세가 된 음녀는 엄청난 몸치장을 한다. 이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요한의 시대에는 이것들이 왕족들의 의복에 물들이는 값비싼 물감들이었다),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다. 그러나 이 여자의 장식들과 보석들은 2장에 나오는 정숙한 어머니의 해(日)의 가운과 별들의 면류관에 비교할 때 값싸고 조잡하게 보인다(계 12:1). (470.2)
미국은 종교 자유를 쉽게 얻게 된 것이 아니다. 로저 윌리암스는 한 겨울에 유배를 당했다! 제퍼슨과 같은 자유의 투사들은 자유를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싸웠던 것이다.
(470.3)
음녀는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였다. 요한은 말하기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하”였다고 했다(계 17:4, 6). (471.1)
음녀의 피흘림과 음행에 관한 이 특별한 표현은 “니느웨에 대한” 구약의 예언에서 빌어 온 것이다. “화 있을진저 피 성이여 그 속에서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여∙∙∙그가 그 음행으로 열국을 미혹”하도다(나 1:1, 3:1~4). 로마 교회가 바벨론으로 호칭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꽤 익숙해졌다. 니느웨는 모든 고대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피에 굶주린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다. (471.2)
중세 로마 교회인 음녀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가해 가톨릭의 잘못된 교리들을 신봉케 하려고 국가와 결탁하는 음행을 저질렀다. 음녀의 박해는 잔인스러웠다. 그러나 요한이 짐승의 등에 앉아 있는 음녀를 보고 있을 때는 그녀의 박해 권세가 잠정적으로 쇠퇴해 가는 때이다. 음녀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471.3)
비록 짐승과 음녀는 별개의 실재로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성격적으로는 이 둘이 동일체이다. 도덕적으로는 그들 사이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둘은 온통 “붉은 빛”이다.(새빨갛다). 둘은 모두 철저히 충성을 요구하며 기회만 주어지면 무자비하게 박해한다. 이 둘의 마지막 싸움은 서로 죽고 죽이는 대 원수끼리의 이전 투구(泥田鬪殿)로 이루어진다. (471.4)
사단의 “획일화”(하나로 됨:At-one-ment)
요한계시록 17장 13, 14절에서는 열 임금(王)들 모두가 그들의 권세를 짐승에게 주고 있다. 새끼 양같이 두 뿔 가진 짐승 또는 거짓 선지자에 관한 기사가 수록된 요한계시록 17장 11~17절에서는, 미국을 상징하는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는 짐승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선동하여 우상을 세우게 하고 짐승을 경배하게 하고 있다. 아마겟돈 전쟁 기사가 나오는 요한계시록 16장 13, 14절에서는 용과 거짓 선지자와 짐승(거짓 선지자의 맹렬한 지원으로 역사의 무대에 재등장한)이 마귀들을 사방으로 파송하여 “온 천하 임금”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471.5)
우리는 이 세 부분에서 하나의 동일한 세계적인 사건을 각기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다. 즉 미국의 지도력에 대한 “열 왕”들의 반응을 보고 있다. 전세계는 미국의 강력한 영향 하에서 종교 탄압을 진척시키는 일에 협조한다. (471.6)
우리가 다니엘 7장에서 처음으로 열 뿔을 만났을 때 그들은 유럽의 국가들을 대표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7장 2절에서는 요한계시록 16장 14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의 “온 천하 임금”들을 대표하여 나타나고 있다. 한때는 로마 가톨릭도 역시 유럽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세계 도처에 로마 가톨릭이 퍼져 있다. (471.7)
1798년도 이전, 즉 산업 혁명과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대혁명 이전에, 그리고 서양의 사상이 전세계에 퍼지기 이전에는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주로 유럽과 중동에 적절히 적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 예언들의 적용 범위가 전세계적으로 넓어졌다. (471.8)
이것은 우리가 이미 다니엘를 다룰 때 밝혔던 기본 원칙과 조화된다. 즉 성경의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존재하는 종교적, 정치적 실재들을 선별하여 언급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 예언은 자주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는 박해와 관련이 깊고, 또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경을 소지하고 성경의 교훈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에는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국가에 산재해 있다. 따라서 성경 예언은 세상 모든 나라에 대해 말하게 된다. (471.9)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는 짐승이 전세계의 백성들을 선동하여 행하게 하려는 일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성경에 위배되는 하나의 예배 일(日)을 정하여 경제상의 벌칙들과 그 밖의 극형으로 이 예배 일을 지원함으로써 하나님의 계명을 반대하는 일이 잘 알려져 있다. (471.10)
이 같은 방침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살 수도 팔 수도 없을 것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사형 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7장에서 상징화된 사태도 이것이다. 17장에서는 짐승이 천하의 임금들을 모아 어린 양으로 더불어 전쟁을 하고 있다. (472.1)
이제는 그 일곱째 머리와 열 개의 뿔을 가진 극적이고도 악마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 짐승은 완전히 사단의 정신으로 굳어진 하나의 무시무시한 지구촌(村), 단일 세계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속죄(atonement), 즉 인간과 하나님의 하나됨(at one)을 모조한 마귀의 하나 됨, 즉 마귀에 의한 획일화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성도를 제외한 전인류가 그의 구세주를 거역하는 정신으로 하나가 되어 서 있다. (472.2)
이 같은 악행을 배후에서 조종한 짐승이 “무저갱(밑이 없는 구덩이)”으로부터 올라왔다가 다시 “멸망”으로 들어갈 자로 묘사된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8절). (472.3)
물론 이 악한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끝난다. “어린 양이∙∙∙저희를 이기실 터이”(14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백성들의 구원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중심적인 주제의 하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신다. (472.4)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은 남녀 노유를 막론하고 모든 “음녀”사회로부터 자신이 선택하여 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뭉쳐 있다. 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그 혹심한 박해를 이기고 살아 남는다. 그리고 재림 때에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그들의 주님을 영접할 것이다(살전 4:16~18). (4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