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어코 이 무리에 끼어야 할 것이다. (443.5)
 너무 늦는 일이 없이 오늘 회개하라
 우리는 바로 앞에서, 하나님이 성령을 계속해서 거역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성령을 거두시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들의 대부분은 더 이상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죄의식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해도 일곱 재앙 같은 위기에 처하게 되면 기억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낄 수가 있다. 만일 그 때에 여러분이나 혹은 필자가 양심에 부끄러운 죄들이나, 극복하지 못한 이기심이나, 고질화된 불순종의 정신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그 죄의식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우리가 박해로 말미암아 비틀거리게 될 때, 사단의 천사들과 짐승의 표를 받은 백성들은 우리의 어려움을 보고 기뻐 뛸 것이다. 우리는 “벌거벗고 다니게” 될 것이며(계 16:15), 짐승을 경배하는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내면적 허약성이 그대로 노출될 것이다. (443.6)
 그러나 분명히 그 때에는 우리들의 죄를 용서받기에 너무 늦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며(단 12:1), 영광으로 가득찬 하늘 성전이 닫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가 끝나게 되기 때문이다. (443.7)
 자비가 아직 남아 있는 지금, 하나님과 그의 사랑의 율법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이웃들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며,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죽으신 어린 양이 우리를 기쁘게 용서하셨음을 믿을 때는 바로 지금이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언약의 약속들을 받아들이고 성령으로 하여금 우리의 마음과 지성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도리를 아로새기게 해야 할 때이다. 지금이야말로 참되고 “거룩한” 안식일이 주는 복되고 평화로운 삶으로 들어가야 할 때이다. (443.8)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 지금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막힌 것 하나 없이 활짝 문이 열려 있는 때, 곧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갈 수 있는 때이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문은 하늘만큼이나 활짝 열려 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443.9)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히 4:7).
(444.1)
 독자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나이에 상관 없이, 그동안 거듭하여 뒤로 미루어 왔던 결심을 다시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초청의 말씀을 지금 듣고 있다면 바로 이 순간에 결심하기를 바란다.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이 장(章)을 다 마칠 때까지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 페이지를 다 읽기 전에 하나님께 머리를 숙이고 다음과 같이 간단히 그러나 진실된 마음으로 간구하라. (444.2)
 “하나님이시여 나는 당신의 충성스러운 백성이 되고 싶습니다.” (444.3)
 “마지막 때의 위기에 나는 기필코 당신의 편에 서기를 갈망하나이다.” (444.4)
 “나는 내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자복하나이다. 당신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444.5)
 “당신의 자비와 능력으로 당신의 계명을 순종하며, 사랑과 거룩함의 일생을 살기 위하여 헌신하렵니다.” (444.6)
 References

 1. 나는 이 점에 대해 촬스 기블린(Charles H. Giblin.)의 덕을 입고 있다. “Structural and Thematic Correlations in the Theology of Revelation 16~22” Biblica 55(1974):487~504를 보라.

 2. Donald Grey Barnhouse, Revelation(Grand Rapids, Mich.:Zondervan Publishing House, 1971), p. 299.

 3. Ibid., pp. 289, 290. 그러나 반하우스(Barmhouse)는 문자적 설명을 선호한다.

 4. Douglas MacArthur, A Soldier Speaks:Public Papers and Speeches of General of the Army Douglas MacArthur, ed. Major Vorin E. Whan, Jr., USA(New York:Frederick A. Praeger, Publishers, 1965), p. 151.

 5. Winston S. Churchill, The Aftermath(1929), quoted in Winston S. Churchill and the Editors of Life, The Second World War, 2 vols.(New York Time Incorporated, 1959), 2:587.

 6. See Lance Morrow, “The Metaphysics of War,” Time, May 17, 1982, p. 88.

 7. See, for example, Hal Lindsey with C. C. Carlson, The Late Great Planet Earth(Grand Rapids, Mich.:Zondervan Publishing House, 1970).

 8. See, for example, George Eldon Ladd,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Grand Rapids, Mich.: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 1972), p. 216. 1

 9. Denis Baly, The Geography of the Bible: A Study in Historical Geography(New York: Harper and Brothers Publishers, 1957), pp. 148–154.

 10. 예외로서, 유명한 Gesenius' Hebrew and Chaldee Lexicon(reprinted, Grand Rapids, Mich.: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 1949), p. 447은 “아마도” 그것은 “군중들이 모인 장소”를 뜻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

 11. See, for example, 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art. “Armageddon.”

 12. Ibid.

 13. 나의 동료 윌리엄 세이(William Shea)는 므깃도의 산이 곧 갈멜 산이며 이것만으로도 아마겟돈의 전형이나 전조를 충분히 제공한 셈이라고 생각한다. 아합 왕(악한 영들처럼)은 온 백성(이 세상)을 갈멜 산(아마겟돈)에 모으고, 하나님과 바알(양과 짐승) 중 누구를 경배해야 될지 겨루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불을 내시어 그 싸움을 승리로 이끄셨다(“동방에서 온 왕들”을 비교하라). 그리고 바알의 거짓 선지자들(짐승, 용, 거짓 선지자처럼)은 죽임을 당하였다. William H. Shea, “The Location and Significance of Armageddon in Rev 16: 16”, Andrews University Seminary Studies, 18(Autumn 1980): 157–162.

 14. 바벨론과 이집트를 마직막 일곱 대접에 연결시키는데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한 사람은 동료 한스 라론델(Hans LaRondell)이다.

 15. See Jack R. Lundbom, “God's Use of the Idem per Idem to Terminate Debate”, Harvard Theological Review, 71(July-October 1978):193~201. Lundbom attributes the termidem per idem to the well-known Old Testament scholar, S. R. Dri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