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8:2~9:21 — 심판의 경고 나팔 4.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성경 예언상의 이슬람
 서유럽은 명목으로나마 그리스도교로 남았다. 동부 유럽도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비싼 대가를 치른 후에야 가능했다.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은 동부 유럽의 선두에 위치했다. 따라서 콘스탄티노플은 모슬렘의 반복되는 공격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674년과 677년 사이에 그리고 717년과 718년에 모슬렘 세력은 콘스탄티노플에 대해 수륙 양면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들의 제2차 침공에는 1,800 척의 함선이 동원되었다고 전한다.26 (247.4)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도교 세력은 그리스 화약으로 알려진 가공한 비밀 무기로 반격 하였다. 엄청난 화력을 내면서, 그 그리스 화약은 모슬렘 함선 사이 사이로 거룻배에 띄워 보내지기도 하고 화살 끝에 부착시켜 활로 쏘거나 투석기로 날려 보내지기도 하고 뇌관을 이용하여 폭발되게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그 화약의 제조 및 사용법은 비밀로 남아 있다. 그 화약은 육지에서보다 오히려 해상에서 더욱 무섭게 탔다. 모슬렘 침략군에게 이 무기는 가공할 피해를 입혔다. (247.5)
 결의를 가다듬은 모슬렘 세력은 의(義)의 왕 아아론(Aaron the Righteous)으로 알려진(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Caliph Harumal-Rashid, 786-809)의 지휘하에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더욱 세찬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821-823년에 이르러서는 한때 콘스탄티노플 공격에 1,800 척의 함선을 동원했던 모슬렘 세력은, 무모하게 도시를 장악하려고 하는 한 무모한 그리스도교도 반역자를 지원하는 미미한 세력으로 약화되었다.28 서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유럽에서도 모슬렘 세력은 저지되었던 것이다. (248.1)
 모하메드를 추종하는 소규모의 집단들이 그때와 그 후로 이슬람 신앙을 동쪽의 중국과 인도네시아까지 전파하였다. 그러나 앞의 지도에서 보는 바와같이 이슬람 팽창의 초기 단계에서는 이슬람 세력권이 사막 메뚜기 분포 지역의 북쪽 경계선과 너무나 가깝게 일치하고 있다. (248.2)
 이슬람과 다섯번째 나팔
 다섯째 나팔의 메뚜기(황충)들은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검은 “연기”에서 나왔다. 여기에 나오는 어둠은 네째 나팔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을 가리거나 거부하는 잘못된 교훈을 나타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코란(Koran)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248.3)
 “무저갱”(無底坑)은 “측량할 수 없는” 또는 “바닥이 없는”의 의미를 갖고 있는 희랍어 “아부소스”(abussos)에서 번역한 것이다. 아부소스는 창세기 1장 2절“큰 바다”시편 71편 20절“무덤”에 대해 희랍어로 붙인 이름이다. 오랜 옛날에는 “큰 바다” 의 깊이나 또는 시체에 대한 “무덤”의 탐욕이 모두 무한정한 것으로 생각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아부소스가 인상적인 것으로 사용되었다. 무덤의 적멸감(寂滅感)은 광대한 아라비아 사막을 상징하기에 적절하며, 모하메드의 고향이기도 한 그 아라비아 사막은 오늘날도 그 전 지역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남아 있다. (248.4)
 그 앞서 하늘에 떨어진 “별”“아바돈”, “아볼루온”, “파괴자”로 불리우는 “왕”—은 이슬람의 교사들과 칼리프(왕)들을 통해 활동하는 사단이 분명하다(여기에서도 요한계 시록은 인간 사회의 가장 나쁜 측면에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메뚜기(황충)들이 머리에 쓴 “면류관”은 이슬람 인들이 쓰는 터번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은 그 당시 아랍 인들이 길게 늘이고 다녔다는 머리 모양으로 생각할 수 있다. 메뚜기(황충)들의 말(馬)들 같은 모양은 아랍 인들이 능숙하게 대규모로 다루고 사용했던 실지의 수 많은 말들과 연관될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 7장의 표범의 날개 같은 메뚜기의 “날개”들은 초기 아랍 정복군의 민첩성을 나타낸다. 트럭이나 기선(汽船), 또는 라디오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 이슬람의 군대는 일백 년 미만의 기간에 한 쪽으로는 중동에서 대서양에 이르는, 그리고 다른 쪽으로는 인도와 중국의 변경에 이르는 적국의 영토를 정복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복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들은 정착할 수가 있었다. (248.5)
 이 상징적인 메뚜기(황충)들은 각종 “푸른” 것이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을 해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푸른 풀”은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미 살펴본 바와같이 이슬람 세력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성경의 백성”으로 대접하여 상당한 자유를 부여해 주었다. 주목되는 사실은 안식일을 준수하는 그리스도 인들이 아르메니아와 이디오피아에 잔존했다는 것이다(맥스웰의 다니엘 연구를 참조). 메뚜기들은 “다섯달 동안 괴롭게 할” 권세를 받았다. 여섯째 나팔을 조사해 보면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일 권세가 위임된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이 “사람 삼분의 일”은 비잔틴 제국과 그 종교 그리고 동방 그리스도교권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말하는 것 같다. (248.6)
 예언상의 “다섯 달”은 150 년이다(계 11:2, 3을 보라). (249.1)
 이슬람 세력이, 결국 무위로 끝난 최초의 맹렬한 침공을 콘스탄티노플에 가했던 674 년부터 무위로 끝난 823년의 마지막 침공까지는 150 년 기간에서 겨우 1년이 모자란다. (249.2)
 투르크의 발흥
 150여 년에 걸친 콘스탄티노플 침공이 끝내 무위로 끝나자 이슬람 세력은 콘스탄티노플 침공 시도를 포기했다. 대신 그들은 여러 나라로 분열하여 서로 싸웠다. 또 비잔틴 제국은 그 자신의 영고 성쇄의 길을 걸어갔다. (249.3)
 그런데 기원 1,000년경에 이르러 쌍방을 모두 경악케하는 하나의 소식이 전해졌다. 셀주크 투르크(Seljar Turk)의 발흥에 관한 뉴스였다. (249.4)
 상당 기간 투르크의 부족 세력은 남부 러시아의 광대한 평원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도중에 다른 세력의 저지를 받아 말머리를 남쪽으로 돌려 이란을 정복하였는데 거기에서 이슬람 신앙을 채택했다. 그리고 일단 이슬람 신앙을 채택하자 그들은 이슬람 백성들 중에 가장 정력적이고 힘찬 세력으로 나타났다. 호전적이며 공격적이고 또한 수효도 많았던 이들은 곧 유망한 지도자들(아마 “네 천사들”)을 중심으로 분열되어 “큰 강 유브라데”*의 상류를 향해 진군하였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비잔틴 제국의 심장부인 소아시아였다. 그러나 그들은 포투스와 타우루스 산에 주둔한 비잔틴 수비대에 의해 상당한 제재를 당했다(“유브라데 강”“결박” 되었다).

* 유브라데 강은 이사야 8장 7절에서도 은유적으로 사용되어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 유브라데 강을 중심으로 건설되었던 제국을 나타내었다.
(249.5)
 이런 위급한 순간에 비잔틴 황제가 어린 상속자를 남기고 사망하였다. 황후는 재빨리 장군 로마누스와 결혼했고 그는 친히 군대를 이끌고 셀주크 투르크를 맞아 싸웠다. 그러나 1071년 그는 유브라데 강 상류에 가까운 만지케르트(Manzikert, 현재의 Malazgirt)에서 벌어진 세기적인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비잔틴 군대는 전멸하고 로 마누스는 포로로 잡혔다. 얼마 후 로마누스는 풀려났으나 어린 황제가 그를 장님으로 만들어 학대했으므로 곧 죽게 되었다.29 (249.6)
 반면 만지케르트에서 비잔틴 군대의 주력을 괴멸시킨 투르크 군대는 타우루스와 폰투스 산맥을 무인지경으로 넘어 신속히 소아시아의 대부분을 장악하였다. 그들은 소아시아에 터키라는 이름까지 붙였으므로 오늘날까지 그 명칭이 전해 오는 것이다. 그들은 산맥을 넘을 때 대부분 말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진행하면서 시골의 물자들을 탐욕스럽게 약탈 하였으므로 가히 2만만(2억) 명의 기병대로 보일만 했다. (249.7)
 비잔틴 제국이 투르크에 의해 “죽임을 당함”
 그때 셀주크 투르크의 주도권이 오스만(othIman)과 그의 후계자들인 오토만 인들(ottomans)에게 넘어갔다. 그리하여 오토만 제국이 발전하게 되는데 바로 이 제국이 우리의 이야기에서 주목을 해야 할 대상이다. (249.8)
 요한계시록 9장 15절은 메뚜기 떼 같은 투르크 모슬렘 세력이 비잔틴 제국과 그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뜻하는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작정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예언에 의하면 모슬렘 군대가 그 말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되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비잔틴 제국을 정복하게 되어 있었다(계 9:17~19). (2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