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7장의 분명한 목적은
“최후의 싸움을 위해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그들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투쟁의 바람이 그 파멸의 일을 이제 막 시작하려 하고 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동시에, 바람을 붙들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신다. 또한 인치는 기별에는 보증이 있다. 인 자체는 성도들의 안전을 보증한다. 일단 그들이 인침을 받으면, 아무리 유혹이 혹독할지라도 그들의 품성은 범접될 수 없으며, 변경될 수 없다. 144,000의 수학적 완전과 조화는, 교회와 세상을 뒤흔드는 사건들이 있을지라도,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온전히 실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6:12-17).”27)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지상에 두 개의 다른 무리의 백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을 지지하지 않는다.
28) 이 책의 다른 곳에서 계시자 요한이 이들을 하나님의 종들(
1:1), 남은 무리 (
12:17), 성도들(
14:12), 어린양의 아내(
19:7-8;
12장 참조) 등으로 지칭할 때, 그는 하나의 백성만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29) 7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의 두 무리, 즉 144,000인과 큰 무리는 분명 관련이 있다. 그들은 역사의 두 무대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한 동일한 무리의 백성이다. 먼저, 그들은 큰 환난의 어귀에 서서 싸우는 교회로,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원수들 위에 내릴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하여 인침을 받았다고 묘사되어 있다. 이후에, 그들은 대 환난으로부터 의기양양하게 나온 승리의 교회로 묘사되어 있다.
30) 전쟁은 끝났고 그들의 승리는 완전하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서 그들의 영 원한 상급을 받는다.
요한계시록 7장이 다루는 주요 문제는 144,000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what)라는 것이다. 그들은 더 큰 무리에서 분리되어, 그 나머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누릴 수 없는 특권들을 허락받은 선택된 무리가 아니다. 닐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인침을 받은 최초의 사람들이 아니다. 성도들은 바울의 시대에도 인침을 받았다. 그들은 간사함이 없고 흠이 없는 최초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핍박을 받았거나 어린양을 따르거나, 또는 땅에서부터 구속함을 받았거나, ‘주께 새 노래를 부르는’ 등의 일에 참여한 처음 사람들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5절의 144,000인에 대한 요한의 8중 묘사는 그들이 만세의 성도들과 공통된 유업을 공유한다.”31) 이런 면에서 요한계시록은 신약의 전반적인 가르침과 일치한다. 곧 하나님의 나라는 씨족, 파벌, 계급도 없으며, 특권이 어떤 사람에게는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없는 그런 곳도 아니다.
요한계시록 7장은 하나님의 백성 중 마지막 세대가
“그 이전에는 결코 도달한 적이 없는 성결의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는 사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32)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구원은 사람 자신의 성결이나 행위의 결과라기보다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이루신 일의 결과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표준은 모든 세대에 동일하였다. 계시자 요한은, 마지막 때에 사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한 자들이라고 단언하였다(
7:14; 12:11 참조). 그들을 승리로 이끈 것은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시다(
12:11). 그들은 그리스도의 보호로 말미암아 큰 환난에서 승리하여 나올 것이다(
7:2-3). 닐도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관찰을 하였다.
무죄(無罪) 상태의 문제는 죄가 행위(act)로 정의되느냐 아니면 본성(nature)으로 정의되느냐에 달려 있다. 마지막 세대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은 확실히 죄된 행위들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재림시 썩지 않을 것을 입기까지는 자신들의 죄 되고 부패하기 쉬운 본성을 놓지 않는다(
고전 15:53).... 요한계시록에서 성도들은 언제 나 정복하는 중에 있다(헬라어 현재시제 사용), 그리스도만이 정복하셨다(부정과거 시제), 심지어 마지막 일곱 재앙의 기간에도 성도들은 짐승과 그 우상을 여전히 정복 하는 중에 있다(
15:2, 헬라어 본문의 시제), 그들은 원수와 안팎으로 여전히 싸우고 있다. 환난의 기간 동안, 그들이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장 큰 죄는 믿음의 결핍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정복당하지 않고 정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있다. 그들은 품성에 완전하며,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을 선택한다. 한 편으로, 그들은 죄된 본성을 극복해야만 한다는 점을 여전히 자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양의 공로로 말미암아 인침을 받고 흠없이 서 있다(
7:14).
33)
이 시점에서 엘렌 화잇은
“144,000이 누구인가와 같은 영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은 논쟁에” 하나님의 백성은 휘말리지 말도록 경고한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은 속한 시일 내에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34) 다른 곳에서 화잇은 신실한 자들에게 이렇게 권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능력을 다 사용하여 144,000인에 들도록 애쓰자.”35) 어느 견해를 취하든지 간에,
요한계시록 7장의 묵시, 곧 인침을 받고 보좌 앞에 서 있는 성도들에게서 하나의 확실한 교훈을 이끌어내야 한다. 일곱 인을 개봉하는 묵시가 보여 주듯이,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은 종종 복음을 위하여 유쾌하지 않은 삶의 경험과 시련에 직면한다.
요한계시록 6장의 사건들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촉발된다. 이는 하늘과 땅이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하늘에 등극하셔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 알지도 못한 채 땅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요한계시록은, 하늘들의 통치자이며 그들을 위해 갈바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 아낌없이 자신을 바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능력과 보호와 지침을 제공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죄는 진실로 그분, 곧 참된 정복자를 통하여서만 정복될 수 있다.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은, 그들이 최후의 투쟁을 막 통과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전 역사를 통하여 그의 백성을 보호하고 위로하신 것같이, 큰 환난의 때에 저들을 보호하고 위로하실 것이라는 확고한 보증을 가지고 있다. 미래는 종종 암담해 보일지 모르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통제하고 계신다. 구속받은 자들이 지상에서 나그네로 있는 동안, 그들의 주님이시요 왕이 신 분이 다시 오셔서 영원히 그들과 함께 거하시기까지(
7:15), 그분은 그들에게 힘과 소망의 근원이 되신다.
1. Johnson, 478.
2. Mounce, 165, n. 1. 참조
3. Ecclesiasticus 39:28–31(The Oxford Annotated Apocrypha, 180).
4. Paulien, "Seals and Trumpets,” 198.
5. 4Q267 19:105–14 (The Dead Sea Scrolls, trans, Michael Wise, Martin Abegg, Jr., and Edward Cook, 58),
6. Fiorenza, Revelation, 66; J. M. Ford, 122.
7. Beatrice S. Neall, “Sealed Saints and the Tribulation,” in Symposium on Revelation, Book 1, Daniel and Revelation Committee, Series 6 (Silver Spring, MD: Biblical Research Institute, 1992), 255,
8. Boring, Revelation, 131.
9. 이 견해를 지지하는 논쟁들을 더 보려면, Aune, Revelation 6-16, 443을 참조하라. 보컴은 요한계시록 7장의 인구 조사는 군사적 목적으로 조사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이런 사실은 7장의 문맥과 요한계시록 14장 3-4절에 의해 확인되며, 요한계시록 14장 3-4절에서 144,000인은 전적으로 성 적 절제를 하는 성인 남자들로서, 고대 세계는 그런 절제를 거룩한 전사(戰士)들에게 요구였다고 주장한 (“The List of the Tribes in Revelation 7 Again,”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42[1991:104).
10. Boring, Revelation, 131.
11. Fiorenza, Revelation, 67. 아우니는 다음의 사실을 지적한다. 서기 1세기 말경에 책을 쓴 요세푸스는 그의 당대에 있었던 12지파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Ant. 11,133), 그리고 이스라엘 12지파의 재집결 에 대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의 종말적 소망은 틀림없이 이 지파들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Revelation 6-16, 442) 12. Ezell, 60-61.
13. 상게서, 59.
14. Neall, “Sealed Saints and the Tribulation,” 256.
15. Hans K. LaRondell, Chariots of Salvation: The Biblical Drama of Armageddon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1987), 171.
16. Ernst D. Schmitz, "dodeka,”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ed. Colin Brown (Grand Rapids, MI: Zondervan, 1978), 2:695.
17. 예를 들면, Charles, 1:201; Swete, 99; Beckwith, 539; Ladd, 116-117; Harrington, 98, 101; Bea sley-Murray, 139-141; Giblin, 91-92; Ezell, 59-61.
18. Herman Hoeksema, 267.
19. 1 Maccabees 13:51(The Oxford Annotated Apocrypha, 256); 2 Maccabees 10:7(The Oxford An notated Apocrypha, 281).
20. Herman Hoeksema, 267.
21. Swete, 99.
22. Barclay, The Revelation of John, 2:26–27.
23. 상게서, 2:27.
24. Paulien, The Bible Explorer, 3.5.
25. Aune, Revelation 6-16, 477.
26. Ellen G. White, The Great Controversy (Mountain View, CA: Pacific Press, 1911), 675.
27. Neall, “Sealed Saints and Tribulation,” 278.
28. 상게서, 275-278.
29. 상동.
30. Ladd, 116.
31. Neall, “Sealed Saints and Tribulation,” 276.
32. 상동.
33. 상게서, 277.
34. Ellen G. White, quoted in 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7:978.
35. 상게서, 7: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