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네 나팔 (8:7-12)
 일곱 천사는 이미 나팔을 불 준비를 하고 있다(8:6). 각각의 나팔을 불 때, 일련의 사건들이 지상에서 일어난다. 앞서 논의된 요한계시록 8장 2-6절에 비추어, 이 사건들은 당신의 백성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하나님의 일련의 역사 개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첫째 나팔 (8:7)
(어구(語句) 해설)
요한계시록 8: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피 섞인 우박과 불.
 이 구절은 출애굽 당시의 일곱째 재앙을 상기시킨다. 불이 섞인 우박은 애굽인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이었고, 파멸의 결과를 낳았다(출 9:23-25), 이 상징적 표현에 대한 또 다른 주요 출처는 곡(Gog)에 관한 에스겔의 예언이다. 우박과 피 섞인 불은 유다의 원수에 대한 집행 심판이었다(겔 38:22-23). 비록 불(시 80:14-16; 렘 21:12-14; 겔 15:6-7) 또는 우박(사 30:30; 겔 13:11-13)이 종종 언약을 저버린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으로 사용되었을지라도, 구약에서 피 섞인 우박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했던 민족들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일관된 무기였다(시 18:12-14; 사 10:16-19; 30:30; 겔 38:22-23 참조).
삼분의 일.
 그리스도께서 첫 네 인을 개봉하심으로써 촉발된 사건들은 분명히 땅의 사분의 일에 영향을 미친다. 각각의 말[馬]은 땅의 사분의 일에 대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6:8 참조). 마찬가지로, 7장 1절의 네 천사는 각각 땅의 사분의 일을 제어하고 있다. 그러나 나팔 재앙은 땅의 삼분의 일에 영향을 끼친다(8:7-12; 9:15, 18), 에스겔과 스가랴의 예언들에서, 배도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그 나라의 삼분의 일에 차례로 영향을 미치는 재앙들로 묘사되어 있다(겔 5:12-13; 슥 13:8-9), 요한계시록 12장 4절에 의하면, 하늘에 있는 큰 붉은 용, 곧 사단 자신의 꼬리가 하늘 별들의 삼분의 일을 쓸어 땅에 던졌다(12:9 참조). 이것은 천사의 삼분의 일이 그를 따랐고, 그의 지배 하에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상징적 바벨론을 심판하실 때, 그것이 삼분(三分)된다는 것이다(계 16:19). 요한계시록 8-9장에서 나팔들을 불 때 영향을 받는 ‘삼분의 일’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사단의 왕국의 한 부분을 가리킨다는 결론이 매우 적절할 것이다.11)
수목과 각종 푸른 풀.
 구약에서 나무와(시 1:3; 52:8; 92:12-14; 사 61:3; 렘 11:15-17; 17:7-8; 겔 20:46-48) 푸른 풀은(시 72:16; 사 40:6-8; 44:2-4)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의 기자들은 그 연관성을 확증한다. 예를 들면, 침례 요한은 유대 백성의 배도한 지도자들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에 비교하였다(마 3:10).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나무를 상징적으로 이용하여 유대 백성을 푸른 나무(눅 23:28-31),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 비유하셨다(눅 13:6-9; 마 7:17-19; 21:18-19 참조).
(주해)
요한계시록 8: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졌다. 구약에서 우박과 불은 하나님을 적대하고 그분의 백성을 압제하는 자들에게 사용된 심판 무기였다. 먼저, 그 것들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거절함으로써 온 땅을 황폐케 하였고, 들의 모든 식물과 나무를 파괴한 애굽의 일곱째 재앙의 우박과 불을 생각나게 한다(출 9:23-25), 그것은 또한 에스겔의 예언을 상기시키는데, 하나님께서는 북쪽에서 온 원수의 나라 곡을 대적하여 피가 섞인 우박과 불을 이용하여 싸우신다(38:22). 그러므로 많은 피 흘림이 수반된 우박과 불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심판의 도구였으며, 특히 그 심판의 대상은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 여러 나라였다.

 이 나팔이 울린 결과로 땅의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었다. 구약에서 수목과 푸른 풀은 종종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초목을 파멸시키는 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사용하신 심판의 무기를 상징하기에 적합하다. 하나님의 백성이 언약에 불성실하여 당신의 원수들과 동일시 되었을 때 이런 심판이 내렸다. 예레미야는 유다를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불렀다. 그러나 이 나라는 바벨론이 불로 멸망시킬 나라다(11:16).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불성실한 예루살렘에 불을 붙이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그 불은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태울 것이었다(20:47).

 유대 지도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침례 요한은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든지 나무처럼 잘려서 불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선언하였다(마 3:10; 7:17-19 참조). 첫째 나팔에 등장하는 나무의 상징성을 이해하는 핵심 성경절은 예루살렘 거민들에 대하여 말씀하신 예수님의 예언에서 발견된다. “푸른 나무에게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게는 어떻게 되리요?"(눅 23:31) 분명히 예수께서는 이 곳에서 자기 자신을 푸른 나무에, 배도한 유대인들을 마른 나무에 비유하셨다. 푸른 나무로 비유된 예수님이 이런 식으로 취급되셨다면, 예수님을 반대하고 거역한 연고로 마른 나무가 된 그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을 것인가?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예수께서 이 곳에서 언급하신 사건은 서기 70년의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이 멸망은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종말에 관해 말씀하셨을 때 묘사하셨던 바로 그 사건이다.

 이러한 성서적 증거는 첫째 나팔이 예수님을 거절하여 십자가에 못박고 복음을 거절한 자 들에게 임한 결과들을 묘사하고 있다는 쪽으로 결론짓게 한다. 백성과 그 지도자들은 그러한 행위들에 대하여 책임이 있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모두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는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새 언약의 백성을 박해하는 자들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그 언약을 거절한 결과들을 맛보게 될 최초의 사람들이다.

 성경은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고 분명히 말한다(벧전 4:17; 겔 9장 참조), 구약에서 ‘우박과 불’이 이스라엘의 원수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했던 것과 꼭 같이, 첫째 나팔의 장면에서 ‘피 섞인 우박과 불’은 상징적 언어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한다. 이 심판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압제하고 핍박자들이 된 하나님 자신의 백성에게 쏟아진다. 서기 70년, 유대가 수도 예루살렘과 함께 멸망하였을 때, 많은 유대인들이 ‘불에 탔다.’ 유대 백성에게 이 사건은 여전히 그들의 역사상 가장 쓰라린 장들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둘째 나팔 (8:8-9)
(어구(語句) 해설)
요한계시록 8: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불붙는 큰 산.
 구약에서 산은 종종 왕국이나 제국을 대표한다(시 48:1; 78:68; 사 2:2-3; 13:4; 31:4; 41:15; 렘 51:24-25; 겔 35:2-3; 옵 8-9). 다니엘의 예언적 묵시에서 하나님의 왕국은 큰 산으로 묘사되어 있다(단 2:356, 44; 사 65:25 참조), 존 폴린은 구약의 여러 심판 구절에서, “산은 나라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지 결코 심판의 대리자가 아니”라고 관찰한다(사 41:15; 겔 35:2-7; 38:20; 슥 4:7).12) 바벨론의 심판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특히 흥미롭다. “온 세계를 멸한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대적이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렘 51:25, 42, 63-64 참조), 요한계시록 18장 8절에서, 요한은 영적 바벨론의 멸망을 언급하면서 “불에 살라 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께서는 강하신 자이심이니라”고 묘사하였다.
바다에 던지우매.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고대 바벨론의 멸망은 바다에 가라앉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그 많은 파도가 그것에 덮였도다.”(렘 51:42) "너는 이 책 읽기를 다한 후에 책에 돌을 매어 유브라데 하수 속에 던지며 말하기를 바벨론이 나의 재앙 내림을 인하여 이같이 침륜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라.”(렘 51:63-64) 계시자 요한은 영적 바벨론을 묘사함에 있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였다.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 하리로다.”(계 18:21)
요한계시록 8:9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삼분의 일.
 요한계시록 8장 7절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주해)
요한계시록 8: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둘째 천사가 그 나팔을 불 때,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졌다. ‘산’은 왕국을 상징한다. 요한계시록 8장 8절‘큰 산’은 큰 왕국과 관련이 있다. 둘째 나팔의 장면은 전적으로 고대 바벨론의 몰락을 묘사한 예레미야의 예언 위에 구축되어 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 곧 “온 세계를 멸한 멸망의 산”을(렘 51:25 상단)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렘 51:24) 심판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바벨론은 하나님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인바, 그것은 불타는 산이 되어(렘 51:25 하단) 바다에 던져지고 함몰된다(렘 51:42, 63-64), 요한계시록 8장 8절“큰 산”이 떨어짐은 후에 요한계시록에 기술된(계 14:8; 18:2 참조) ‘큰 성 바벨론’의 몰락을 상기시킨다.

 바벨론의 몰락에 관한 예레미야서의 본문들은 둘째 나팔 재앙의 장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시점에 ‘바벨론’은 대 로마제국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파괴하였기 때문에, 바벨론은 자신의 운명을 감수해야 되었다.13) 베드로와 요한은 ‘바벨론’을 로마에 대한 암호로 사용하였다(벧전 5:13; 계 17:18). 그러므로 로마에게서 새 바벨론의 모습을 본 그리스도인들은 둘째 나팔의 불타는 산의 상징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인 로마제국의 멸망을 쉽사리 파악하였을 것이다. 존 폴린은 “비록 하나님께서 로마를 당신의 언약을 어긴 유대 민족에 대한 형벌 집행자로 사용하셨을 지라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에 대한 적대감과 교회에 대한 핍박이 로마의 궁극적인 몰락을 재촉하였다”고 하였다.14) 이 큰 파괴의 산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에드윈 씰리(Edwin R. Thiele)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대 국가의 몰락 이후, 심판의 다음 장면은 그 규모가 훨씬 더 크고 더 광범위하다.... 둘째 나팔은 상당히 두렵고 불같은 파괴적 세력으로 하여금 고대 세계의 흉흉한 바다에 떨어져 그 혼탁한 바다를 피로 변하게 한다. 예루살렘이 멸망된 후 로마의 몰락이 이르렀다.... 가이사 제국이 운명의 날을 맞았다. 하나님의 응보의 도끼는 피할 수 없다. 하늘에서 쏟아진 화염처럼 반달의 겐세릭(Genseric), 고트의 알라릭(Alaric), 훈족의 앗틸라(Attila)는 로마를 덮쳐 파멸과 폐허와 살육과 피의 자국을 남겼다. 불타는 산과 같은 불가항력적이고 파괴적인 세력으로, 야만인들의 떼가 로마 백성을 덮쳤다. 마침내 온 제국은 엄청나고 돌이킬 수 없는 재난에 휘말렸다. 로마는 사라지고 공의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15)
요한계시록 8:9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바다에 가라앉는 불타는 산은 바다를 로 변하게 한다. 그리하여 해양 생물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의 삼분의 일이 파괴된다. 이것은 물이 피로 변해 고기들을 죽게 만든 애굽의 첫째 재앙을 생각나게 한다. 구약에서 바다는 종종 하나님을 대항하는 적대적인 백성을 상징한다(사 57:20; 17:12-13; 렘 51:41-42; 단 7:2-3, 17).16) 부(富)의 운반선인 선박들은 자만심에 빠진 국가의 자존심을 상징한다(참조 계 18:17-19),17) 그러므로 둘째 나팔은 로마제국의 몰락과 “그 경제와 사회 질서의 괴멸”을 묘사하고 있다.18)

 결론적으로, 첫 두 나팔 재앙은 유대 나라와 로마제국 등 두 세력에 영향을 미친다. 적대적인 이 두 국가는 하나님을 반대하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연합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맛본 첫 국가들이 되었다.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즉, 그들은 언약 아래 있었으나 후에는 예수님을 적대하였다. 이 심판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가며, 이어서 기독교 역사의 일세기 동안 교회를 압제하고 핍박한 일에 유대인들과 합세하였던 자들에게 내렸다.
셋째 나팔 (8:10~11)
(어구(語句) 해설)
요한계시록 8: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큰 별.
 성경에서 별은 종종 천사를 상징한다. 욥기 38장 7절에서 천사들을 별이라고 불렀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동일한데(1:20; 9:1 참조), 12장 4절에서, 사단은 하늘 별들의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진다. 이 별들은 분명히 하늘에서 사단과 함께 쫓겨난 천사들이다(12:9), 하늘에서 떨어진 ‘큰 별’이사야 14장 12-15절을 생각나게 한다. 이 구절은 하늘에서 떨어진 ‘계명성’에 대하여 언급한다. 이것은 분명히 루스벨과 하나님에 대한 그의 반역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단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졌다고 말씀하셨다(눅 10:18). 유대인들에게 별들은 “불순종으로 마귀가 되고 악하게 될 수 있는 신적 존재들을 상징하였다.”19) 셋째 나팔소리에 하늘에서 떨어진 ‘큰 별’은 하나님을 반역했을 때의 사단 자신을 상징한다(계 12:9-10 참조), 요한계시록 9장 1절에서 상징적으로 묘사된 떨어진 별과 9장 11절에서 확인된 ‘무저갱의 사자’는 동일하다.
강들과 물샘.
 성경에서 샘은 종종 영적 자양분을 상징한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을 것이라고 하였고(사 12:3), 솔로몬은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고 하였다(잠 13:14),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당신을 버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견책하셨다.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 2:13)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하였다(시 1:3; 렘 17:7-8 참조), 강들과 물샘에 대한 강력한 상징은 초막절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 속에 반영되어 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8-39) 예수님은 강들과 물 샘들을 영적 자양분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하셨다. 이 자양분은 성령이 사람의 삶 속에 들어오실 때 받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결론 지으면서, 요한은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들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마실 기회를 주시겠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용한다(계 21:6).
삼분의 일.
 요한계시록 8장 7절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요한계시록 8:11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쑥.
 쑥(헬, 압신쏘스 apsinthos)은 근동에서 쓴맛으로 악명 높은 아르테메시아 압신씨움(artemesia absinthium)이라 불리는 식물의 이름이다(신 29:17-18; 애 3:19). 비록 쑥은 독이 없을지라도, 종종 독성과 연루되었다(신 29:18; 렘 9:15; 암 6:12 참조).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의 말씀을 거절하였기 때문에(렘 8:9),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겠다고 경고하셨다(렘 9:13-15; 8:14 참조). 선지자들에게도 동일한 경고가 주어졌다. 왜냐하면 “사악함이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로서 나와서 온 땅에 퍼”졌기 때문이다(렘 23:15). 구약에서 쑥은 고통과 슬픔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였다.
(주해)
요한계시록 8: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요한은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로부터 여러 강과 샘 원천에 떨어져 쓴 것으로 오염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는 것을 보았다. 성경에서 자주 별은 천사를 상징한다. 이 별이 큰 별로 칭해졌다는 사실은 천사들보다 탁월한 어떤 인물을 가리 키는 것이다. 분명히 이것은 이사야 14장 12절의 하늘에서 떨어진 계명성을 상기시켜 줄 뿐만 아니라,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생각나게 한다(눅 10:18), 횃불같이 타면서 떨어지는 이 큰 별은 틀림없이 타락한 천사들의 우두 머리인 사단을 상징한다. 그는 한때 하나님 앞에 있었고, 후에 반역함으로써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났다(계 12:9-10 참조).

 이 큰 별은 강들과 물 샘들 위에 떨어진다. 강과 물 샘들은 영적으로 목마른 백성을 위한 영적 자양분, 즉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을 상징한다. 셋째 나팔의 장면은 종교 교사들과 지도자들을 통하여 진리와 구원의 원천과 시내를 오염시켜 치명적인 독을 뿌리는 일에 사단이 가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요한계시록 8:11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하늘에서 떨어진 큰 별의 이름은 쑥이다. 그것은 신선한 물에 떨어져 그 물의 삼분의 일을 쑥으로 변하게 한다. “쑥은 죄와 배도에 의한 쓰라림의 상징이다.”20) 그러므로 별이 떨어지고 신선한 물의 공급원이 오염되었다는 것은 배도와 왜곡된 복음의 교훈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배도의 결과로, 백성 중에 많은 사람들이 물로 죽었으니 이는 그 물들이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폴린의 말대로, 영적 생명의 근원이 배도와 거짓 교훈으로 오염되었을 때, “그 즉각적인 결과는” 이 물 근원에서 “마시는 자들이 영적으로 죽는 것이다.”21) 구약의 기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그 언약으로부터 등을 돌릴 때, 그들은 쑥을 먹고 독이 든 물을 마실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한다(렘 8:14; 9:13-15; 23:15). 그러므로 별이 떨어짐과 신선한 물의 공급원 오염은 배도와 진리 왜곡을 가리킨다. 씰리는 이러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주석하면서 강조하였다.

여기에 괄목할 만한 대혁신적인 변화가 묘사되어 있다. 죽음의 별 쑥이 한때 순결했던 생명의 샘들에 떨어짐으로써 샘들은 오염되고 부패되었다. 그리하여 그 오염된 물을 마시면 사람들은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는다. 순결한 교회는 깨끗한 시냇물이요 생명 샘이다. 원수가 그 교회에 들어가면 교회는 부패된다. 그럴 때에 교회는 사람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단이 통제하게 되고, 교회의 통제권은 완전히 그에게 넘겨질 것이다. 즉, 교회는 생명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되는 대신 사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악취가 될 것이다.22)
만일 첫 두 나팔소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유대 나라와 로마제국의 몰락을 다루고 있다면, 셋째 나팔은 역사상 로마제국 후의 시기와 관련이 있다. 종종 암흑 시대 또는 중세 시대로 언급되는 이 시기는 대 영적 쇠퇴와 배도를 목격하였다. 그 때 교회의 대세는 사도적 복음에서 떠났고, 성경의 건전한 가르침을 왜곡시켰다. 복음의 진리는 교회의 전통과 교리로 대체되었다. 교회는 성경과 어긋나는 죄 된 행위들을 조장하였다. 백성은 복음의 단순성으로부터 떠나 길을 잃었다. 배도와 기관화된 교회의 매력적인 영향력에 저항한 사람들은 거절과 박해를 당하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다가오는 배도에 관하여 경고를 받았다. 예수께서는 기만적인 가르침으로 제자들을 미혹할 거짓 선지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셨다(마 24:4-5, 11, 23-24).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행한 고별 설교에서 바울은 다가오는 교회 내의 배도에 대하여 예언하였다(행 20:26-31), 유사한 예언들이 신약의 다른 곳에서 언급된다(딤전 4:1-2; 딤후 4:3-4; 벧후 2:1-3; 요일 1:18-19; 4:1; 유 3-4). 피할 수 없는 배도는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보낸 기별의 통상적인 주제이기도 하였다. 셋째 나팔 장면을 이해함에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2절의 다가오는 배도에 대한 바울의 예언은 특히 중요하다. 바울은 다가오는 배도가 ‘막는 자’, 곧 로마제국에 의해 지체되었다고 분명히 말한다. 유대주의의 몰락과 특별히 ‘막는 자’로서의 로마가 멸망함으로 중세에 만연했던 배도의 물결에 문이 활짝 열렸다. 그 배도의 결과 오염되고 독이 든 물을 마신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죽었다. 이것은 분명히 셋째 나팔의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묘사된 상황이다.
넷째 나팔 (8:12)
(어구(語句) 해설)
요한계시록 8: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삼분의 일.
 요한계시록 8장 7절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어두워지니.
 성경에서 어둠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창조에 그 뿌리가 있다. 창조시에 하나님께서는 땅에 빛을 주실 목적으로 하늘의 천체인 해, 달, 별 등을 창조하셨다(창 1:14-18). 구약에서 밝은 빛의 출처인 해와 달은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의 표였다(사 30:26), 이러한 빛의 근원들을 어둡게 함은 창조를 역행하는 것이요 창조 이전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구약의 여러 예언에서 천체들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심판에 등장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일관된 상징이다. 예를 들면, 에스겔은 애굽을 쳐서 이렇게 예언하였다.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워 별로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우며 달로 빛을 발하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두움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겔 32:7-8)

 이사야는 여호와의 날에 바벨론에 임할 심판을 비슷하게 묘사하였다.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사 13:10)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심판 예언에서, 아모스는 여호와의 날을 빛이 아닌 어두움의 날로 묘사하였다.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암 5:18) 요엘에게 그 날은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일 것이었다(욜 2:2). 그 때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둘 것이었다(욜 2:10; 3:15). 예수님은 그분의 재림과 관련하여 땅을 심판하기 위해 오실 때 천체가 어두워지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4:29; 막 13:24-25; 사 13:10 참조).

 신약에서 빛과 어두움은 선악의 상징이다. 흑암은 종종 초자연적인 세력들과 연관된다(엡 6:12; 골 1:13; 벧전 2:9; 계 16:10). 바울에게 빛과 어두움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벨리알의 관계와 같다(고후 6:14-15). 더 나아가 바울은,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였다(고후 4:4). 복음의 변화시키는 감화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일을 계속 하신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예수님은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밝히는 참 빛이시다(요 1:9).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 12:46; 눅 1:79 참조) 복음 기별을 갈릴리 사람들에게 전파하실 때에,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고 계셨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마 4:16) 신자들이 흑암의 영역에서 구출 받아 하나님의 기이하신 빛에 들어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서다(골 1:13-14; 벧전 2:9), 복음의 빛을 거절하고 흑암에 머무는 자들은 자신들 위에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된다(요 3:19 참조).
(주해)
요한계시록 8: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넷째 나팔 재앙은 천체, 곧 해의 삼분의 일, 달의 삼분의 일, 그리고 별들의 삼분의 일을 친다. 그 결과로 천체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졌고 낮의 삼분의 일은 비침이 없고 밤도 그러했다. 이 곳에 묘사된 장면은 애굽에 내린 아홉 번째의 재앙, 곧 흑암의 재앙을 생각나게 한다(출 10:21-23). 애굽에 대한 예언에서 에스겔은 그 땅에 새로운 재앙이 다가옴을 보았다. 그 재앙은 애굽의 흑암 재앙에 의해 묘사되었다(겔 32:7-8). 구약의 여러 예언서에서 천체가 어두워지는 것은 심판 때에 등장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일관된 상징이다(사 13:10; 겔 32:7-8; 욜 2:10; 3:15 참조).

 이전의 세 나팔에서 그러하였듯이, 넷째 나팔의 장면도 하늘이 문자적으로 어두워진다기보다 오히려 배도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빛이 없는 것을 뜻하는 “어두움”은 복음의 부재로 말미암는 영적 이해력과 통찰력의 결핍을 의미한다(사 8:20; 60:1-2; 마 4:16 참조). 구약에서 어두움은 죄와 배도에 대한 심판을 일관되게 상징한다. 선지자 미가는 이 비유적 표현을 유다 선지자들의 배도를 묘사할 때 사용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흑암을 만나리니 점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미 3:6)

 신약에서 빛은 복음을 대표한다. 예수님 자신은 영적 생명의 궁극적 근원이시다. 그분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밝히시는 참 빛이시다(요 1:9), 인간은 그분을 통하여서만이 흑암의 영역에서 구출 받아 하나님의 기이하신 빛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다(골 1:13-14; 벧전 2:9). 흑암이란 복음의 부재로, 죄를 상징한다. 백성이 복음의 빛을 거절하고 어두움을 택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 예수께서는 복음을 무시하고 거절한 결과는 어두움이라고 매우 분명히 말씀하셨다. 넷째 나팔 재앙의 어두움에 대한 상징성은 바로 이런 각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셋째 나팔의 배도는 넷째 나팔에서 더 전개된다.23) 셋째 나팔이 상징적 언어로 중세 교회의 영적 쇠퇴와 배도의 결과를 그리고 있다면, 넷째 나팔은 중세 이후 세상에 만연했던 극심한 어두움을 묘사한다. 첫 단계로서, 복음의 단순성과 순결성을 강조했던 종교개혁자들의 활발 한 세대가 소위 신학적 논쟁들과 다툼들로 그 특징을 이루었던 개신교의 학구주의로 계승되었다. 이 시기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보다 공인된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다음 단계로서,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유럽을 풍미하였던 계몽 시대 혹은 이성 시대의 지적 혁명은 서구 사상을 지배하던 기독교 신앙의 통치를 종식시켰다. 이 새로운 현상은 전통 종교를 거절하였으며, 합리주의, 회의(懷疑)주의, 인본주의, 그리고 자유주의를 생성시켰다. 그것의 마지막 산물로서 세속주의가 태동하고 요동쳤다. 서방 세계에서 세속화가 과학, 정치, 종교 자유, 예술, 그리고 교육 등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많이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 미친 부정적 영향은 긍정적 영향보다 더 강했다. 물질주의적 출발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부정, 어떤 종류의 믿음이든지 간에 그 믿음에 대하여 갖는 회의주의와 더불어, 세속주의는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인간의 이성으로 대체하여 버렸다. 이러한 세속주의의 부정적 측면은 점차적으로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활력을 죽은 형식주의와 영적 무기력 속으로 퇴보케 하였고 수백만의 사람들에게서 구원의 소망을 빼앗아 버렸다.

 그러므로 넷째 나팔은 만연한 세속주의의 영향 하에서 참 빛의 영적 근원, 즉 성경적 복음에 대한 현세적 어두움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나팔의 심판을 영적 생명의 유일한 근원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살한다고 보는 것이 최선의 이해다.24) 넷째 나팔 재앙이 끼치는 특별한 영향으로 영적 빛의 근원이 부분적으로(삼분의 일) 어둡게 된다. 그 혹심한 어두움과 두려운 결과는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에서 더욱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