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책의 제목 역할을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구절로 자신의 책을 펼친다. 그 책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apocalypse]”로 일컬어진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묵시들을 주셨거나,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계시의 대상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거의 확실히 두 개념이 다 의도된 듯하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베일을 벗기는 일, 곧 그분의 계시다. 예수께서는 그 계시를 통하여 교회를 위한 갈바리 이후의 자신의 봉사를 드러내신다. 요한계시록은 구약 성경이 그러하듯이(
요 5:39),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마지막 책은 사복음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사렛 사람으로 기술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우편 우주의 보좌에 좌정하셨다고 설명한다. 그 곳에서, 그분은 더 이상 슬픔의 사람이 아니라, 온 우주의 왕이요, 주님이시다.
처음부터 요한계시록의 독자들은 성경의 마지막 책은 단순히 다가올 무서운 사건들 (아마겟돈 전쟁, 기근, 박해, 혹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통상적 의미의)
‘계시’가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오히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천명한다. 이 책은 이 곳 외에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려보려는 의도가 있었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를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 즉,
“시작과 끝”(
21:6; 22:13)이요,
“처음과 나중”(
1:17; 2:8; 22:13)이라고 가리킨다. 그분은 바로 요한계시록의 내용 자체시다. 이 책에서 그리스도를 삭제해 보라. 그러면 무섭고도 기괴한 사건들로 구성된
‘할리우드(Hollywood)의 요한계시록’ - 곧, 아무런 소망도 없는 무서운 미래를 제시하는 책이 될 것이다.
성경의 마지막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곧 온전한 의미의 복음인
‘좋은 소식’을 그 속에 담고 있다. 케네쓰 스트랜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는 보증이 있다. 즉, 그분은 항상 역사 속에 계셔서 그들을 양육하시며, 종말적 대단원에서 온전히 옹호하실 것이며, 영원한 생애를 통하여 이해를 초월하는 관대한 보상을 주실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이 동일한 주제를 취하여 아름답게 뻗어나간다. 이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전반적인 성서 문헌과 어긋나는 일종의 엉뚱한 계시가 결코 아니라, 성경 기별의 핵심과 본질을 바로 전달한다. 요한계시록이 강조하여 지적하는 것처럼,
“살아계신 자” 곧 사망과 무덤을 정복하신 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충성된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순교를 당할 때에라도 그들은 승리할 것인바(
12:11),
“생명의 면류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
2:10; 21:1-4; 22:4 참조).
9)
이어서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목적을 서술한다. 그 목적이란 하나님의 백성에게 속히 될 일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이 구절은 무엇보다도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에게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다고 선언한
다니엘 2장 28절을 가리킨다.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속히 될 일”을 왕에게 알렸다. 요한은 분명
다니엘서 2장을 염두에 두고 이 표현을 쓴 것이다. 더욱이 감람산에서 예수께서는 재림 전에
“일어나야 할” 것들을 지적하셨다(
마 24:6; 막 13:7; 눅 21:9). 다니엘에 의하여 예언되었으며 감람산 담화에서 예수께서 더 깊이 가르치고 지적하신 것들을 하나님께서 성취하시리라는 확신을 주기 위함이 요한계시록의 목적이라고 요한은 독자들에게 말한다.
종말이 오기 전에 어떤 사건들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은, 요한계시록 속에서 역사는 우발적이 아님을 지적한다. 위르겐 롤로프(Jurgen Roloff)가 말하듯이,
“세상의 사건들은 맹목적인 우연이나 인간의 주도권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에 따라 펼쳐진다.”10) 지상 역사는 십자가와 함께 그 마지막 국면에 돌입하였다. 요한을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계획이 이 곳 지상에서 성취되기 위하여 십자가와 재림 사이에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요한계시록의 목적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사건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목적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 주기 위함이다.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이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하여 종말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려준다는 사실을 주목함 역시 중요하다. 우리의 구원과 왕국에 들어감에 있어 중요하고 유익한 것들은 예언의 말씀 속에 나타나 있다. 요한계시록이 우리에게 보여 주지 않는 것은 정확히 언제 어떻게 그 사건들이 일어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알려지도록 계획된 것이 아닌 듯하다.
“나타난 것은 우리에게 속하였고, 감추인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였다.”(
신 29:29) 인간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없다. 마지막 사건들의 전개 양상이나 시간은 우리에게 비밀이 되었고, 하나님 자신만 알고 계신다(
마 24:36; 행 1:7). 정확히 언제 어떻게 마지막 사건들이 발생할 것인지는 성취 이전이 아니라, 성취 때에 가서야 분명해질 것이다.
그러나 미래 사건의 묘사, 특히 종말에 일어날 사건들은 더 깊은 의도가 있다. 괴상하고 겁나는 이 사건들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우리 마음에 감동적으로 알리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마 20:20), 지혜로우신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사건 중에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고 한 약속의 온전한 영향이, 예언의 말씀으로 그 사건들을 풀어주지 않으면 제 힘을 발휘할 수 없음을 아셨다. 마지막 위기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지의 심각성을 우리에게 부각시키려는 목표로 그토록 생생하게 사건들을 묘사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것들을 열어 보임은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며, 그 힘든 때에 그들을 붙들어 줄 것이다. 예수께서는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며(
요 16:4),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
눅 21:28)다고 말씀하셨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적 기별의 핵심과 취지와 조화를 이룬다. 이 책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이 신실한 자를 삶의 시련으로부터 빼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그리스도께서 삶의 시련 속에서 자기 백성들과 동행하실 것을 보증한다. 그리스도는 항상 그들과 함께 하시며, 세상 끝 날까지 그리하실 것이다.
그 다음에 본문은 요한계시록의 사건들은
속히 일어나야 한다(
1:1, 3; 22:6)고 말한다. 심지어 요한 당시에도 재림은
“속히” 있을 것으로 묘사되었다(
계 2:16; 3:11; 22:7, 12, 20 참조). 요한이 그 약속을 들은 이후 거의 2천년이 지났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이 임박한 종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종말과 관련하여 요한은 그 예언들의 최종적 성취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성취의 시작에 관심을 두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무엇보다
‘속히’라는 말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천년은 하루와 같다(
벧후 3:8).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 실현에 있어 최종적 국면에 접어들었다.
11) 이와 같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때가 가까웠”다(
계 1:3). 그러나 사단에게는 그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계 12:10-12). 십자가는 사단을 패배한 원수로 만들었다. 그의 때가 짧다는 현실은 그로 하여금 이전 어느 때보다 더욱 결사적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는 일에 매진하게 하였다. 이
“속히”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과 관련하여 특별히 적용된다. 우리는 예수께서 오늘일지 내일일지 언제일지 그 오실 날을 알지 못한다. 그분의 오심을 위한 준비의 시간과 기회는 미래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언제나 현재에 있다. 요한계시록의 독자들은 자신들의 당대에 재림의 임박성을 깨달으라는 촉구를 받았다.
12) 요한의 때에도 예수님의 강림은
“곧” 있을 사건이었으며, 그 이후로 재림은 각 세대에게 더욱 임박해졌다.
요한은 계속 자신에게 주어진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지시되었다(signified)고 설명하였다.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이 하늘의 실재나 다가올 사건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도록 사진처럼 묘사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내용들은 비유적 혹은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요한계시록은 그림처럼 말한다. 예언된 장면들과 사건들이 문자 그대로 실재적이지만, 그것들은 이상 속에서 상징적인 표현으로 요한에게 나타났다.
본문은 요한계시록의 상징들을 선택한 것은 요한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지적하는 듯이 보인다. 하나님은 사람이 있는 형편 속에서 사람을 만나신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기별을 전달하셨을 때에, 그 연로한 선지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하셨다. 요한은 성령의 감동하에서 그가 묵시 중에 본 것을 이제 자신의 언어로 기록한다. 그러나 기록하는 중에 요한은 인간의 언어가 하늘의 실재를 묘사하기에는 부적절함을 자주 깨달았다. 그러므로 요한은, 자신이 이상 중에 본 것을 설명하며 이를 분명히 하려고
‘같은’이나
‘듯한’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종종 자신만의 상징들을 덧붙였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현대 독자들은 이 책의 상징적 성격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별들은 그 내용에 대한 문자적 이해를 통해서가 아니라 상징들에 대한 해석을 통하여 온다. 이 점을 명심하는 것은 이 책의 많은 상징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실수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것이다. 성경의 다른 부분을 읽으면서, 분명히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할 곳이 아니라면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는 본문이 문자적 의미를 의도한다고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한, 기록된 장면과 사건을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무엇은 상징적으로, 무엇은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은 요한계시록 해석자에게 항상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상징들은 그 책 속에서 이미 뜻이 정해졌지만 (
1:20; 12:9; 17:11, 15 참조) 대부분은 설명되지 않았다. 상징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우화적 상상이나 오늘날의 상징이 뜻하는 것에서 나온 의미를 부과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책의 상징들을 해석하는 열쇠는 우화적(allegory)이 아니라 표상적(typology)이다. 상징의 의미는 영감 받은 저자의 의도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의 당대의 독자들에게 전달되었던 의미에 의해 주관되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은, 우리의 상황이 아니라, 영감받는 저자의 언어와 시간과 장소 속에서 전달된 것임을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언어는 고대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묵시적 상징 언어였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은 성령의 인도를 받은 요한이 자신의 묵시들을 1세기의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였을 상징과 이미지로 묘사하였음을 명백히 지적한다. 언어는 그들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환경이 갖는 일상의 실체들을 반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의 상징들은
“독자 혹은 청중의 지성에 뿐만 아니라 감성에도” 호소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한다.
13) 그러므로 상징적 언어의 의미를 결정함에 있어 일차적인 임무는 원 수신자들, 즉 요한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였을 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주의 깊은 연구는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의 상징은 구약에서 빌려왔음을 나타낸다. 요한계시록은 거룩한 역사로부터 온 장면과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이세벨, 모세, 다윗, 소돔, 애굽, 바벨론, 예루살렘 및 유프라테스 강 등의 인명이나 지명을 비롯하여 어린양, 나팔, 무저갱에서 나온 메뚜기, 시온산, 모세의 노래, 유프라테스 강이 마름, 성전과 성전의 기명, 기타 수 백 개 다른 내용 속에 표현된 주제들은 모두 구약에서 취한 것이다.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묘사함에 있어서 영감은 과거의 언어를 사용한다.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은 특히 창조, 홍수, 출애굽, 다윗 왕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유수 등의 주요 구약 사건들 위에 기초되었다. 이런 사건들의 인유는, 하나님의 미래의 구원 활동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 활동과 매우 유사할 것임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감동적으로 알리기 위하여 의도된 것이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의 소망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신 일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과거에 늘 함께 하셨던 동일한 전능하신 하나님이 미래에도 역시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실 것이다.
대부분의 요한계시록의 상징적 언어가 구약에서 빌려온 것이긴 하지만 요한이 이상 속에서 본 많은 장면의 묘사는 당시의 그레코로만 주제와 행습으로 물들어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의 언어는 유대적 묵시 문학의 상징을 크게 반영한다(예를 들어, 무서운 짐승, 머리, 뿔, 별, 땅의 네 바람, 여자, 일곱 머리 달린 용). 이런 묵시적 상징과 개념은 1세기 백성들의 언어의 일부였으며, 그들은 그러한 상징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끝으로, 요한계시록의 많은 구절들은 신약의 신학적 개념과 주제들과 매우 유사하다. 요한계시록의 많은 개념들은 특히 예수의 어록과 바울의 어떤 진술을 반영한다. 신약과 요한계시록의 여러 구절과의 유사성에 주의를 기울이면, 요한계시록의 기별을 더 넓게 이해할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기별의 깊은 이해는 요한이 자신의 책 속에 수집해 놓은 상징과 이미지를 끌어온 주 자료인 구약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일단 어떤 상징에 관한 구약의 배경이 확인되면, 고려 대상인 구약의 이미지가 복음에 의하여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영감 받은 저자가 그 수정한 의미를 확인하기 위하여 그 상징을 사용한 정황을 연구한다.
14) 이 연구는 요한계시록의 많은 상징을 설명하며, 각 상징이 나오는 본문에서 영감 받은 저자가 전하려고 했던 기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