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장 9절에서 요한계시록의 첫 큰 단원, 즉 일곱 교회에게 보낸 기별이 시작된다. 이 부분은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의 묵시(
1:9-20)와 교회에 보낸 일곱 기별 (
2:1-3:22)등 두 개의 뚜렷한 단원으로 확실하게 구분된다.
그분의 보증의 말씀, 곧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 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하데스)의 열쇠를 가졌”(
1:17-18)다는 말씀에 이어, 높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에게 그가 받은 계시들을 기록하여 교회에 전달하라고 명하셨다(
1:19-20; 1:11 참조). 각 교회들에게 일곱 기별을
‘따로따로’ 보낼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1) 하나의 편지 형식으로 구성된 일곱 기별은, 요한계시록의 나머지 부분과 함께 모든 일곱 교회에 보내졌다(
1:11 참조).
2) “각 교회”에 보내진 기별은
“분명히 다른 여섯 교회를 위한 기별이기도 했다.”(특히
2:23 참조) 그러므로 각 기별의 내용을 자세히 분석하기 전에 편지 전체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일곱 기별의 순서 먼저, 일곱 기별이 전달된 교회들은 어떤 지리적 순서로 열거되어 있다. 이 일곱 교회가 자리한 도시들은(
1:11 참조) 로마제국의 주요 도로들 상에 30~40마일 간격으로 위치하여, 하나의 순회로를 형성하고 있었다.
3) 이 도시들을 방문하는 여행객은 밧모에서 가장 가까운 에베소를 시작으로 반원형으로 여행하여 시계 방향을 따라 북쪽으로 서머나, 버가모, 남동쪽으로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를 경유하여 마침내 라오디게아 방향으로 이동한다. 교회에 보낸 기별들이 이 여정을 따라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일곱 도시에 전달된 서신들은 주변 지역에 쉽게 회람(回覺)되었을 것이다. 매 편지는 손으로 기록되어야 했기 때문에, 각 편지는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야 되었다.”4) 또한 일곱 교회의 순서는 일곱 가지로 된 촛대의 등불의 위치를 반사하는 것 같다. 촛대의 한편에 있는 각 등불은 반대편에 있는 등불과 평행을 이룬다. 일곱 기별은 정확히 그런 방식으로 기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와 마지막 기별, 곧 에베소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명백히 평행을 이룬다. 두 교회는 사랑 없음과 율법주의의 위험에 처해 있었다. 두 번째와 여섯 번 째, 즉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들의 신실함 덕분에 칭찬 받는다. 그들에게는 견책이 없다. 두 교회는
“자칭 유대인들이라 칭하는” 자들(
2:9; 3:9)의 반대에 직면한다. 셋째와 다 섯째, 곧 버가모 교회와 사데 교회는 배도에 있어 유사하다. 그들에 대한 언급 중에 좋은 점이라고는 거의 없다. 여려 교회의 중간에 위치하여 넷째 기별을 받은 두아디라 교회는 여타 교회들과는 분명 다르다. 분리된 교회로,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기별은 다른 여러 기별 중 가장 길다. 이 같은 평행구조에서, 한 편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곱 기별의 구성 형태 본 장의 마지막에 삽입된 도표
‘일곱 교회에 보내는 기별의 조화’(pp. 110-112)는 일곱 기별의 구조에 더 많은 빛을 던진다. 각 기별은 6중의 공동 형태를 띠고 있으며, 각 기별은 다른 기별들과 약간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모든 기별 중에서 유사 요소들을 비교함으로, 기별의 내용이 내포하는 의미에 대하여 더 완전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각 기별은 교회의 주소로 시작된다.
“____에 있는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노니.” 각 교회는 주소의 이름에 의해 알려진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들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신다.
둘째, 각 교회에 보낸 기별은, 구약의 예언 신탁(神託)에서 사용된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 씀하시되”와 유사한
“이같이 이르시되”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여기서 분명 말씀하는 분은 그리스도시다. 그분이 말씀하면, 교회는 듣고 순종해야 한다. 이 기별들은 예수님을 말씀하시는 이로 소개하지만, 결론에서는 성령이 말씀하시는 분으로 되어 있다(
2:7, 11, 17, 29; 3:6, 13, 22). 이것은 예수께서 성령을 통하여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을 뜻한다. 이런 방식으로 예수께서는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다른 보혜사를 통하여 그들에게 뜻을 전달하시겠다는 약속을 성취하신다(
요 14:26; 15:26; 16:13).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의 임재의 실재가 하나님의 백성 중에 나타나며,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의 말씀하심을 통해 부활하신 구주의 음성을 듣는다.
“이같이 말씀하시되”라는 기별에 이어, 기별을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단한 묘사가 뒤따른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계시록 1장 9-20절의
“인자 같은 이”(
1:12-20)가
“일곱 등 대 가운데”서 거니시는 위대한 묵시에서 자신의 특성들 중 어떤 것으로 자신을 알리신다(
2:1 참조). 사용된 특성들은 적절하였고, 특히 각 교회의 상황과 각 교회가 직면한 특수한 문제(들)에 적합하였다.
에베소(
2:1-7): 이 교회는 거짓 교사들에 의해 위협을 받았고, 처음 사랑을 버렸다. 예수님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잡으시고 일곱 금 등대 사이에 거니시는 분”(
2:1)으로 오신다. 등대로서의 위치를 상실할 위험에 처해 있는 교회를 온전히 주관하는 분이시다(
2:5)
서머나(
2:8-11): 혹심한 핍박을 통과하고 있는 서머나의 고통당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죽었으나 다시 사신 분으로 적절하게 제시하신다(
2:8). 예수님은 그들에게 현재 그들이 당하는 것을 자신이 친히 체험했음을 확실하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부활의 약속을 주신다(
2:10-11).
버가모(
2:12-17): 버가모 교회는 외적, 내적 문제에 봉착했다. 밖으로는 핍박이요. 안으로는 거짓 교사의 극성이다. 예수님은
“좌우에 날 선 검”가지고 이 교회로 오신다. 예수님은 우선 핍박자들을 대항하여 싸우실 것이다(
2:13), 그리고 자기 입의 검으로 그들 중에 있는 거짓 교사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2:16).
두아디라(
2:18-29): 두아디라 교회는 갈라졌다. 그 교회의 소수의 신자들은 여전히 충성되나, 다른 이들은 교회 내의 유혹적이며 부패시키는 영향에 의해 배도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날카로운 눈으로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면서 이 교회로 오시며, 타협이 확고함을 뜻하는 빛난 주석의 발로 오신다.
사데(
3:1-6): 이 교회는 영적으로 죽었다. 충성스럽게 겨우 살아남은 소수도 죽기 직전이다(
3:2),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이 교회에 오신다. 생명이 없는 이 교회의 유일한 희망은 그들의 생기를 돋우고 생명을 가져다 줄 일깨우시는 성령 안에 있다.
빌라델비아(
3:7-13): 빌라델비아 교회는 거의 힘이 없다(
3:8). 예수님은 아무도 달을 수 없는 문을 여시려고 오신다.
라오디게아(
3:14-22):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황은 너무 나빠서 예수께서는 좋은 말씀을 하실 것이 없다. 미지근하고 자만한 교회에게 예수님은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분으로 오신다. 예수님의 날카로운 증언은 이 교회의 진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마음이 나뉘고 미지근한 교회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무에서 유를 불러내는 예수님의 창조의 능력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 다음에는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이 나온다. 이 소단원은
“내가 안다.”라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일곱 교회 중 다섯 교회에게는
“내가 네 행위를 안다.” 라고 하시는 반면, 서머나와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기별에서는
“내가 네 환난을 안다.” “내가 네 거주하는 곳을 안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차이는 이 두 교회가 처한 특수한 환경에 기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각 교회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대한 치밀하고도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신다. 그분의
“꿰뚫는 눈”은
“각 교회의 참 상태를 드러내며 종종 교회의 자체 평가를 역전시킨다.”5) 그분은 각 교회를 개별적으로 알고 계시는데, 왜냐하면 그분은 교회 가운데로 거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만일 교회들이 사는 방법과 변화하는 방법을 알기 원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들을 필요가 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각 교회가 가진 좋은 특성들을 칭찬하신다. 칭찬할 것이 거의 없는 사데와 라오디게아는 제외되었다. 그 다음에는 교회의 결함과 관련한 책망의 말씀들이 나온다. 서머나와 빌라델비아는 책망이 면제되었다.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심지어는 회개하라는 말조차 없다.
넷째, 평가 다음에는 권고의 말씀이 뒤따른다. 각 교회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신 후, 그리스도께서는 그 상태를 바꾸라고 충고하신다. 교회는 회개하고 그 길을 바꾸라는 요청을 받거나 그들의 충성과 순종을 굳게 하라는 격려를 받는다.
다섯째, 이어서, 각 교회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촉구의 말씀을 듣는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말은 사복음서에서 그리스도께서 긴 말씀의 결론으로 하신 말을 반향한다(예를 들면,
마 11:15; 13:9, 43; 막 4:9, 23; 눅 8:8; 14:35), 이 구절은 한 교회를 넘어서서 더 광범위한 청중을 암시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요 16:13 참조), 그리스도께서 1세기의 일곱 지역 교회의 회중에게 하신 말씀은 곧 성령을 통하여 각 시대의 각 곳에 있는 그리스도인 개개인과 온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여섯째, 각 기별은
이기는 자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으로 결론짓는다.(다섯째와 여섯째 요소는 마지막 네 기별에서 역순(逆順)으로 주어진다.) 그리스도인들은 승리의 생애를 살고 그리스도께 충성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각 교회는 먼저 교회와 비교할 때, 더 많이 쇠퇴하였을지라도, 먼저 교회보다 더 많은 약속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 에베소: 생명나무(
2:7)
● 서머나: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며 둘째 사망을 피함(
2:10-11)
● 버가모: 감추인 만나, 흰 돌, 새 이름(
2:17)
● 두아디라: 만국 위의 권세, 만국을 철장으로 부술 만국 위의 통치권, 새벽별(
2:26-28)
● 사데: 예수와의 동행, 흰옷을 입음, 생명의 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음, 아버지 앞에서 인정되고, 천사들 앞에서 인정됨(
3:4-5)
● 빌라델비아: 시험의 때를 면함, 결코 나갈 일이 없는 성전의 기둥이 됨,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도성의 이름, 하나님의 새 이름이 그들 위에 기록됨(
3:10-12)
● 라오디게아: 예수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음(
3:21). 사실상 이 약속은 다른 모든 교회에 주어진 모든 약속을 다 아우른다. 예수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는다 함은 모든 것을 소유한다는 뜻이다.
각 교회는 앞의 교회와 비교할 때에 더 쇠퇴한 것이 사실이나, 앞의 교회보다 더 많은 약속을 받는다. 교회의 영적 쇠락에 반하여 약속이 더 많아졌다는 것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바울의 진술과 관련이 있다(
롬 5:20), 앨런 존슨(Alan Johnson)은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들은
창세기 2-3장을 반향한다고, 즉 본래 아담이 에덴에서 잃어버린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회복하게 된다고 주목한다.
6) 이 약속의 성취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두 장에 기술되어 있다(
계 21-22장).
일곱 기별의 구조 형식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기별의 구조 형식에 대하여 두 가지 상이한 제안이 있었다. 한편으로, 윌리엄 셰이(William H. Shea)는 기별의 형태가 언약 형식을 따른다고 주장하였다. 고대의 언약 조약은
(1) 전문(前文),
(2) 서언,
(3) 세부 조항 혹은 요구,
(4) 축복과 저주 및
(5) 증인 등 다섯 가지 표준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요소를 일곱 교회에 보낸 일곱 기별의 각 내용에 적용할 때, 셰이는 각 경우에 그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관찰하였다. 곧
(1) 전문은 그리스도를
“... 하신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라는 말과 그에 따른 칭호로 소개한다.
(2) 서언은
“내가 네 행위를 안다”는 말로 과거의 관계에 대하여 말한다.
(3) 세부 조항은 다른 훈계와 더불어
“회개하라”는 명령과 함께 소개된다.
(4) 축복은
“이기는 자에게”와 같은 보상의 말로 구성되어 있으며, 반면 저주의 위협은 불규칙적으로 나타난다.
(5) 성령은 증인의 역할을 하는 데, 교회는 성령의 말씀을 청취한다. 그러므로 일곱 기별은 일곱 교회 각각에 대한 언약 갱신의 진술의 역할을 한다고 셰이는 결론지었다.
7) 다른 한 편에서, 데이비드 아우니는 왕이나 황제의 칙령이 일곱 기별의 형식에 영향을 미쳤다고 제시하면서
(1) 서론(praescriptio),
(2) 중심 단락, 그리고
(3) 결론이라는 몇 저자의 생 각을 반영한다.
8) 아우니는 일곱 기별이
(1) 서론,
(2)
“내가 아노니”라는 말로 소개된 중심 부분, 그리고
(3) 경계하라는 촉구의 말씀과 승리의 말을 포함한 이중적 결론 등의 삼중 구조를 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는 페르시아 왕들 이후 로마의 집정관과 황제들에 의해 공표 되었던 왕/황제의 칙령의 주요 양상이던
“이같이 말하되”라는 형식은 일곱 기별을 (비형식적이고 사적인)서신이라기보다는 (형식적이고 공적인)칙령으로 분류한다고 주장한다. 왕/황제의 칙령 형태를 사용함으로 요한은,
“하나님을 모방하되 악한 쪽으로만 모방하는 로마 황제”와는 대조적으로, 높이 되신 그리스도를 당신의 신민에게 말씀하시는 왕으로 제시한다.
“영원한 주권자와 왕 중 왕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에 합당하게 엄숙하고도 권위있는 칙령을 발하시는 분으로 제시된다.”9) 이 두 제안들을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보아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것들은 상호 관련이 있고,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제안들은 요한계시록 전체가 다양한 배경의 주 제를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보여 주는 한 예다. 언약 형태라는 개념이 요한계시록의 첫 주요 부분의 언약적 측면과 특성을 가리키고 있는 반면, 왕/황제의 칙령으로 보는 견해는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기별 형식이 소아시아 배경의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 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일곱 기별의 해석 교회들에 보낸 일곱 기별이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고도 심사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요한계시록 자체는 일곱 기별의 내용이 특수한 시대와 장소를 반영하며, 그것과 관련이 있음을 분명히 지적한다. 그러나
1장 19절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은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과 관련이 있다.
4장 1절에서 요한은, 그가 보게 될 묵시들은
“이[일들] 후에 마땅히 될 일”이라는 음성을 들었다(헬라어에서
4장 1절의 이 구절과
1장 19절의 어법은 동일하다).
“이[일들]”은
요한계시록 1장 19절의
“이제 있는 일[들]”과 분명히 동일한 것으로 일곱 교회에게 보낸 기별이다(
계 2-3장).
이것은 일곱 기별이 원래 로마 속주의 아시아에 있었던 교회들에게 보내졌음을 나타낸다 (
1:11), 각 기별은 특정한 교회가 위치해 있는 도시의 이름을 거명한다. 각 기별은, 해당 교회가 위치한 도시의 특별한 역사적 상황과 함께, 그 기별을 받은 교회의 현 상황과 상태를 반영한다.
10)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오는 위기를 직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려고 각 교회를 방문하신다. 그분은 특정하고 실제적인 문제, 필요 사항, 그리고 환경 등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 기별들을 바르고 의미 있게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 기별을 기본적으로 기별의 원 역사적 배경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일곱 기별은 아마도 일곱 교회에게 따로따로 보낸 것이 아니라, 요한계시록 전체가 함께 일곱 교회에게 보내졌을 것이다(
1:11 참조).
“교회들에게” 보낸 기별들의 결론 부분은
“각 교회에 보낸 기별이 동시에 모든 교회들에게 보내졌음”을 암시한다.
11)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당시 골로새(
골 1:2), 히에라볼리(
골 4:13), 드로아(
행 20:5; 고후 2:12), 그리고 밀레도(
행 20:17)의 교회를 포함한 아시아 속주의 더 많은 교회를 대표하기 위하여 선택된 것 같다. 여기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충만과 총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원래 일곱 교회에게 보내진 기별이지만, 그 기별들은 아시아 속주의 모든 교회와 아마 전 역사에 걸친 모든 교회를 위한 기별이기도 했다.
12) 메릴 테니가 지적하듯이, 여러 교회가 순회로 상에 위치한 것은
“역사를 통해 드러난 기독교 신앙과 발전의 전체적 주기(週期)를 보이고 있음”을 암시한다.
13) 그러나 비록 일곱 기별이 처음부터 요한 당시의 아시아의 교회를 위한 것이었을지라도, 그 기별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한다. 그 기별들은
“어떤 의미에서, 역사의 어느 때를 물론하고 전 교회를 묘사한다.”14) 그 내용들은 각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있으며, 기별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 각 기별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라는 분명한 호소로 끝을 맺는다. 이런 사실은, 일곱 기별이 일정 지역을 넘어서 더 넓은 범위의 청중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성령의 계속적인 임재를 통하여, 일곱 기별은 각 시대의 각 곳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당된다. 그 기별은, 서머나 교회처럼 핍박을 받는 사람, 빌라델비아에 있는 자들처럼 충성스러운 증인, 사데에 있는 자들처럼 영적으로 죽은 그리스도인, 또는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처럼 뜨뜻미지근한 그리스도인 등, 각기 다른 삶의 정황과 필요 속에 있는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 즉, 일곱 기별이 아시아에 있는 이 일곱 개의 그리스도인 공동체 자신들의 시대와 장소에서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이해할 목적으로 읽혀야 하는 반면, 그 내용들은 여러 교회들의 다양한 상황들과 즐겨 듣고자 하는 역사의 어느 시대나 어느 곳의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적용할 수 있다. 그럴지라도, 요한계시록은 자체가 예언이라고 주장하며(
1:3; 22:7, 10, 18-19), 그렇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예언으로서 접근되어야 한다. 예언(prophecy)은 앞 일을 말하는 것(foretelling)과 선언(forth-telling)이기 때문에, 그의 당대의 백성에게 행한 선지자의 기별은 그의 시대를 넘어서는 기별이기도 하다.
요한계시록 2-3장의 교회들에게 보낸 일곱 기별은, 비록 기본적으로는 1세기의 청중을 위한 것일지라도, 요한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미래를 위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일곱 교회는 어떤 교회에서도 범할 수 있는 과오들의 예를 제공한다.”15) 어떤 주석가들은
요한계시록 2-3장의 기별을 요한 당대로부터 재림에 이르는 기독교 역사의 일곱 개의 연속적인 기간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에베소는 기독교 시대의 1세기의 교회를 대표하고, 서머나는 2~3세기의 박해 받는 교회, 버가모는 4-5세기의 타협하는 교회, 두아디라는 중세 교회, 사데는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종교개혁과 종교개혁 이후의 시기, 빌라델비아는 18세기 말과 19세기의 선교운동의 교회, 그리고 라오디게아는 마지막 때의 교회 등을 대표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즉, 일곱 기별이 기독교 역사에 대한 예언적 개요로 의도되지 않았음을 문맥이 암시(예를 들면,
다니엘 2장처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은, 일곱 교회에 보낸
요한계시록 2-3장의 기별들은 전 역사에 걸쳐 사는 그리스도인 들에게 훨씬 더 넓은 의미를 주었다고 시사한다.
교회의 기존 순서를 주목하는 일은 특별히 흥미롭다. 위대한 교회 역사가들 중 필립 샤프 (Philip Schaff)와 같은 어떤 이들은 기독교의 역사를
(1) 사도 시대,
(2) 환난과 핍박의 시대,
(3) 타협과 교회와 국가 간의 연합 시대,
(4) 중세 시대,
(5) 종교 개혁 시대,
(6) 개신교 정통주의 시대(이 때 실천보다 교리가 더욱 중요시 되었다),
(7) 불신과 세계적 선교 시대 등 일곱 개의 중요한 기간으로 나눈다.
16) 비록 모든 일곱 기별이 교회 역사의 각 기간에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을지라도, 요한계시록의 일곱 기별이 샤프가 개괄한 일곱 기간의 교회 특성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특별히 흥미롭다.
17)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일곱 교회는 기독교회 역사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에베소에서 라오디게아까지의 진행 과정은 기독교회의 주요 기간들을 망라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기별은 하나님께서 역사상 다른 시점에 있는 당신의 백성에게, 그들의 특수 환경과 요구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기별이라고 해도 매우 타당할 것이다.
존 폴린은 라오디게아에 보낸 기별과(
계 3:17-18) 아마겟돈 전쟁 중 하나님의 백성에게 보낸 최후의 경고 사이에 약간의 유사성이 있음을 주시하였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계 16:15)
‘입고’,
‘벌거벗고’,
‘수치’ 등은 두 본문에 나타난 중요 단어다. 요한은 종말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최후의 경고를 하기 위해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기별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일곱 교회의 연속적 순서 중 마지막인 라오디게아가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기간의 교회와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폴린은, 이 부차적 증거는 아시아 속주의 일곱 지역 회중에게 보낸 기별들이 보다 깊은 의도를 지녔다는 입장을 지지한다고 믿는다.
18) 요약하면, 계시자 요한은 교회에 보낸 기별이 기독교 역사에 대한 연속적 예언이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의 증거는 일곱 기별이 역사의 어느 시점에만 국한되지 않고, 어떤 시대나 장소의 모든 교회를 대표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해석의 마지막 단계에서,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기별을 전 역사에 걸쳐 있는 기독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평가로 읽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여기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 주석19)은 일곱 기별을 교회사의 연속적인 일곱 기간에 적용하는 일에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우선, 구체적인 연대적 정보가 따르지 않기 때문에 일곱 교회에게 준 기별을 시간성이 있는 예언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그 기별은 교회의 연속적인 경험을 묘사했다고 간주되어야 하며(
단 2, 7장처럼), 시간성이 있는 고전적 예언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일곱 기별로 특징을 이룬 역사의 각 기간은 정확한 연대로 구분될 수 없다.
“연대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용된 편리한 지표일 뿐, 정확한 연대의 경계는 아니다. 한 기간에서 다음 기간으로 바뀌는 과정은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므로 여러 역사의 기간 을 구분하며 사용된 모든 연대는 제안이며, 대략적인 것으로 여겨야 한다. 한 가지, 이 모든
“연대 매김의 차이들은 일곱 교회에 보낸 일곱 서신의 전체적인 기별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 이런 맥락에서 허먼 혹세마(Herman Hoeksema)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곱 교회가 이 세상 역사의 어느 기간에나 존재하는 [전체] 교회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며, 각 교회가 교회 시대 역사의 한정된 기간을 대표한다는 의견에는 반대하는데, 차례대로 일곱 교회에 전달된 기별 속에는 일반적으로 세계 교회가 따를 만한 움직임의 경향이 암시되어 있다고 믿는다.20)
아시아의 일곱 지역 교회에 보낸 기별은 모든 역사에 걸쳐서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에게 보내는 기별로 존재하여 왔다. 일곱 기별은 교회 역사상 각 시대의 각 곳에 있는 그리스도인 개개인 뿐만 아니라, 지역적 그리고 세계적 교회를 위하여도 그 중요성을 지닌다. 이 기별들은
“귀 있는” 모든 자, 곧 기꺼이 들으려고 준비되어 있는 자를 위한 것이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기별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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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2:1-7) |
서머나(2: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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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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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에 대한 묘사 |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 나신 이가 이르시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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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평가 “내가 아노라” |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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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망 |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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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음성을 들으라는 초청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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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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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2:12-17) |
두아디라(2:1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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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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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에 대한 묘사 |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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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평가 “내가 아노라” |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 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 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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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망 |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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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음성을 들으라는 초청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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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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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3:1-6) |
빌라델비아(3: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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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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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에 대한 묘사 |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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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평가 “내가 아노라”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 하였도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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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망 |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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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음성을 들으라는 초청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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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 |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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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3: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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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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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에 대한 묘사 |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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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평가 “내가 아노라”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 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 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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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망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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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음성을 들으라는 초청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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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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