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엘렌 G. 화잇과 다니엘서 및 요한계시록의 해석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대총회 성경연구소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연구하는 것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영적인 활력을 얻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항상 그래 왔다. “목사들은 확실한 예언의 말씀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의 믿음의 기초로 제시해야 한다”고 엘렌 화잇은 선언하였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수록된 예언들을 주의깊이 연구해야 하고, 이와 관련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신 말씀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GW 148.

 다시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될 때, 신자들은 전적으로 다른 신앙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열린 문들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과 정신은,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보상이 될 그 축복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계발해야만 하는 그 성품에 대하여 깊은 감명을 받게 될 것이다.”—TM 114.

역사주의(歷史主義) 해석 방법
 성경을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다시피,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은 대부분이 상징들(symbols)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성경 학도들은 구약의 대선지서와 소선지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직선적으로 표현된 고전적 예언과 구별하기 위하여 이 책들을 묵시적 예언(apocalyptic prophecy)이라고 부른다. 이 두 권의 묵시적인 책들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구성을 뒤흔들어 온 도덕적인 쟁투의 대회전(大會戰)을 계시하시면서, 그의 사업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악의 세력들이 최후의 파멸을 맞는 것에 초점을 맞추신다.

 애초부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상징들과 그 의미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예언 해석의 역사적인 방법(historical method of prophetic interpretation)을 따라 왔다. 때때로 이러한 접근 방식은 역사주의 방법 또는 연속적인 역사적 방법이라고도 불리운다.

 역사주의 방법은, 역사적 시간 속에서, 즉 선지자 다니엘 및 요한 자신의 시대로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이 최종적으로 설립될 때까지의 기간 동안에,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이 펼쳐지고 또한 그 성취를 보도록 의도되었다고 하는 가설을 받아들이고 있다. 역사주의 해석 방법에는 연-일(年-日)원칙(상징적인 1 일 = 문자적인 1 년)이 필수적인 부분이다. 왜냐하면 연-일 원칙은 우리가 예언된 사건들을 역사의 대로(大路) 위에서 그 위치를 매길 수 있도록 상징적인 때의 기간들을 펼쳐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막 1:15)라고 선포하셨을 때, 그분은 다니엘서를 해석하기 위하여 역사주의 방법을 사용하셨다. 이렇게 예언의 성취를 확인하시면서 그분은 메시야의 출현을 예고한 다니엘의 70 주일 예언(단 9:24-27)을 암시하셨다.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이 가까웠을 때, 예수께서는 다시 한번 같은 예언을 언급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이번에는 또 다른 측면을 지적하셨으니, 곧 “한 왕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26절; cf. 마 24:15; 눅 21:20)할 것을 지적하셨다. 이 사건들은 그분의 죽음과 승천 이후에 일어날 일들이었다. 이것의 역사적인 성취는 A.D. 70년에 로마인들에 의한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로 나타났다.

 개신교 개혁자들(우리는 그들의 뿌리로부터 생성되었다)도 마찬가지로 역사주의 방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그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있는 예언들 중의 여러 예언의 초점이 교황권에 맞춰져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해석 방법을 따라서 초기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선구자들은 우리 자신의 시대와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이중 봉사와 한 백성으로서 우리의 신원(身元), 그리고 우리의 과업을 감지하게 되었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의 위치(位置)를 정하고, 한 교회로서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성경 진리들을 돋보이게 하는 독특한 틀을 이루게 되었다.

과거주의(過去主義)해석 방법과 미래주의(未來主義)해석 방법
 제16세기 개신교의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해석은 로마 가톨릭 교회를 흔들어 놓았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가톨릭의 반(反)종교개혁 운동은 두 가지의 예언 해석 체계, 즉 과거주의와 미래주의를 위한 첫 주장들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비난하는 예언적 손가락을 교황권 제도로부터 비켜나게 하는 일을 도왔다.

 과거주의(preterism:“과거”를 의미하는 라틴어 praeter에서 온 말)는 이러한 예언서들이 기독교 시대〔西紀〕이전의 과거, 혹은 초기 기독교시대의 몇 세기 동안에 성취되었다고 주장했다. 과거주의는 마침내 제18세기 말의 개신교 사상에 침투해 들어가서 자유주의적인 개신교회의 표준적인 견해가 되었다. 오늘날 전형적인 역사적-비평적인 학자들은 다니엘서가 형성된 시기를 B.C. 제2세기로 보면서, 그 가운데 그들이 주장하는 예언들은 수리아의 셀류시드(Seleucid) 왕조의 왕이었던 안티오쿠스 IV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라는 인물과 그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기독교 시대〔西紀〕의 첫 세기들 동안의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국한시킨다.

 미래주의가 개신교 사회에 들어온 것은 제19세기 초이다. 오늘날 가장 두드러진 형태의 미래주의 해석은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제 1-3장을 제외하고는)의 성취가 교회의 비밀 휴거(據去)로써 시작되는 역사의 마지막 3 년 반의 환난 기간에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다니엘 9:24-27에 나오는 70 이레 예언에서 70째 주일은 그 배경으로부터 따로 떼어져서 세상의 마지막 7 년으로 다시 놓여진다. 다수의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은 미래주의를 수용하여(첨가하고 변형하여)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해석하기 위한 그들의 표준 방식으로 삼고 있다.

 날렵하게도 로마는 해석 방법이 변경되면 결론도 필연적으로 변경될 것임을 알았다. 과거주의와 미래주의가 공히 예언의 각광을 로마와 그의 활동으로부터 돌리게 하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과거주의와 오늘날의 역사적-비평적 연구들은 모든 성취를 과거에 있었던 것으로 여긴다. 미래주의는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의 내용의 성취를 미래의 시점으로一저들이 주장하는바 비밀 휴거(據去) 이후에 오는 세상의 마지막 때로一미뤄 버린다.(역사적-비평적 학자들은 또한 다니엘 11:40~45을 실현되지 못한 예언으로 간주한다.)

 오늘날, 사실상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만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해석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바울과 개혁자들의 방법이었던 역사주의 방법의 지지자로서 외롭게 버티고 있다.

반(反)종교개혁이 재림교회의 문을 “두드린다”
 매우 실제적인 의미에서 반(反)종교개혁의 정신이 오늘날 재림교회의 문을 두드리며 황급히 밀고 들어오고 있다!

 재림교회의 어떤 성경 학도들은, 교회가 이 예언서들이 과거에 이미 성취되었거나 또는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간주하는 과거주의와 역사적—비평적 입장들을 심각하게 고찰해 보기를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언들이 오늘날의 교회에 의미있고 관련성이 있는 것이 되게 하려는 각양한 접근 방법들이 채택되고 있다.

과거주의(過去主義)의 변형(變形)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한 예언이 다중적(多重的, multiple)으로 성취될 수도 있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다니엘 8장의 작은 뿔이 안티오쿠스 IV세, 이교 로마, 교황 로마, 심지어는(세상 끝 직전에) 그리스도를 가장한 사단에게서(각기 다른 시대에) 잇따라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접근 방법은 주장하기를, 다니엘서의 예언들은 하나님의 예지(豫知)의 계시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그것들은 그분의 뜻을 진술해 놓은 것이며, 이스라엘의 순종(順從)에 달려 있는 조건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받아들이는 일에 실패하고 하나님의 대행자의 자리에서 버림을 받았을 때, 다니엘서의 예언들의 근본 취지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후대의 영감받은 저자들이 주어진 예언을 재적용(reapplication) 하지 않는 한, 다니엘서는 오늘날의 교회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한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는 다니엘 7:9-10, 13-14에 기록된 재림전 심판(再臨前 審判, preadvent judgment)의 장면이 요한계시록 20:11-15집행 심판(執行 審判, executive judgment) 장면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후자의 본문은 다니엘 7장에 대한 요한의 재적용(reapphcation)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과거주의 입장의 세번째 부산물은 어떤 사람들에게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대하여 관념론자(觀念論者, idealist)의 접근 방법을 갖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그 책들을 선과 악 사이의一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대쟁투에 대한 도해(상징의 형태로 된)로 보며, 거기서는 영적인 교훈들만을 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갈등이 뚜렷한 한편, 관념론자들은 이상 더 나아가지 않기로 선택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상징들을 역사적인 실제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려 들지 않는다.

미래주의(未來主義)의 변형(變形)들
 재림교회의 다른 성경 학도들은(목회자들과 평신도들 공히) 보다 미래주의 지향적인 접근 방법을 취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견지하고 있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대한 역사주의적 해석에 충실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 예언들을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에 연관시키려는 깊은 욕구가 있다. 어떤 이들은 어떤 특정한 예언들(일곱 나팔과 같은)의 일차적인 성취(primary fulfillment)를 은혜의 시기가 끝난 후에 두는가 하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어떤 특정한 예언들이 마지막 때에 이중 성취(dual fulfillment)될 것이라는 쪽을 선호하는 것이 더욱 보편적이다. 그들이 믿기로는, 교회가 역사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어떤 예언들을 연관성이 있게 하려면 이중 성취안(dual fulfilment device)을 수용하는 길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일관성이 없다. 왜냐하면 단지 어떤 장들에 대해서만 재적용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들은 다니엘 7장8장의 짐승들이 현재 미국, 러시아, 이라크, 이란의 움직임에서 또 다른 성취를 보고 있다고 가르친다. 어떤 사람들은 1260 년의 기간이 미래에 하루에-하루 원칙에 따라서 또 다른 성취를 볼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70 이레 예언에 대하여 이중적인 성취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중의 특정한 예언들의 이중적 성취를 주장하는 선의의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 모두가 엘렌 화잇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이중 성취 이론을 지지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고전적인 예언들(대선지서나 소선지서의) 중의 더러는 부분적인 성취가 있은 후에 더욱 완전한 성취가 있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그 문맥 속에 가지고 있음을 항상 인정해 왔다(예컨대, 성령을 부어주심에 대한 요엘의 예언〔욜 2:28-32]과 엘리야 기별에 관한 말라기의 예언〔말 4:5-6〕).

 그러나 우리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입장을 취한 적이 없다. 하나님의 예지(豫知)로 인한 이 웅대한 계시들에 대하여 이중적 혹은 다중적인 성취를 부여하는 것은 그 예언의 얼굴 위에 밀랍으로 된 코를 만들어 줘서 이쪽 저쪽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과 같다. 이중 혹은 다중 성취는 이 위대한 예언들에게서 진정한 의미를 박탈하고 우리의 영적인 확실성에 대한 그 예언들의 공헌을 증발시켜 버리는 것이다.

 일곱 교회에 대한 시리즈는 독특한 것이다(계 1-3). 처음 기록되었을때 이 기별들은 분명히 그 지역의 상황에 직접 적용되었지만(1:11), 그것들은 또한 계속하여 각 시대의 교회에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한 경우라 할지라도 성령께서는 오직 하나만의 참된 예언적 성취를 의도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일곱 교회의 이름들은 기독교 시대의 각기 다른 기간들의 교회를 상징한다. 7이란 수는 완전함을 가리키며, 그 기별들이 시간의 종말까지 전파되리라는 사실을 상징하는 한편, 사용된 상징들은 세계사의 각기 다른 기간들의 교회의 상태를 드러낸다.”—AA 585.

 그러나 엘렌 화잇의 저술들 속에 숨겨진 채로 있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一이중 성취 방법一의 씨앗들을 우리가 찾아낼 수도 있다는 주장은 옳은 주장인가? 엘렌 화잇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해석에 역사주의 해석 방법을 사실상 가르치고 찬성하면서, 동시에 후일에 교회가 그것에 기초하여 예언 해석의 새로운 방법을 세울 수도 있는 진술들을 여기 저기에 끼워 놓았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로마교회가, 그들의 예수회(Jesuit) 신학자들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위한 새로운 해석 방법들을 제안하였을 때, 온전하게 인식했던 다음과 같은 타당한 진리를 우리는 잊지 말자: 방법을 변경하면 불가피하게 결론도 변경된다.

 예언 해석의 견지에서 볼 때 재림교회는 십자로에 서 있다. 반(反)종교 개혁의 정신이 재림교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문을 열고 초기의 개신교가 걸어간 길을 가기로 결정하는 것이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 오늘날의 에큐메니칼한 분위기에서 그 길을 가도록 유혹하는 것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왜 우리가 우리의 선구자 조상들의 예언 신앙에 충성스럽게 남아 있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엘렌 G. 화잇의 역사주의적(歷史主義的) 입장
 엘렌 화잇이, 교회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해석함에 있어서 역사주의 방법 이외의 여하한 다른 방법도 따르도록 의도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요한계시록에 관한 그의 언급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은 다니엘과 요한의 때로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세워질 때까지의 역사 안에서 펼쳐질 것이라는 역사주의적인 이해를 명명백백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은 일어났던 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 그리고 장차 올 일들을 세계 앞에 열어 놓는다. 그것은 세상의 마지막을 맞이 하게 될 우리들의 교훈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경건한 두려움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아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 — Ellen G. White Comments, 7BC 954; RH 1897. 8. 31(강조 첨가).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깊은 일들이 묘사되어 있다. ∙∙∙ 거기에 있는 진리들은 요한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물론,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이 예언 속에 묘사된 광경들 중의 더러는 과거의 것이며, 어떤 것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예언들은 암흑의 세력들과 하늘의 왕자 사이의 대쟁투의 끝을 보여 준 것이며, 어떤 것들은 새롭게 된 세상에 있는 구원얻은 사람들의 승리와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AA 584(강조 첨가).
이러한 포괄적인 진술들 속에서 엘렌 화잇은 묵시적인 예언이 역사가 펼쳐짐에 따라서 어떻게 차례로 성취되도록 하나님께서 고안하셨는지를 보여준다.

   (1) 이 예언들 중의 더러는 지나간 시대에 이미 성취된 것들이다.

   (2) 예언들 중 어떤 것들은 지금 성취되고 있는 것들이다.

   (3) 어떤 것들은 쟁투의 마지막 싸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아직은 성취되지 않은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4) 예언들의 어떤 부분은 새 땅 시대와 관련된 것으로서 그 때에 가서 성취를 보게 될 것이다.

 엘렌 화잇은 요한계시록이 요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하다고 확언한다. “그것의 진리들은 이 지구의 역사의 마지막 때에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것은 그가 이미 성취된 예언들의 일부가 이중적으로 성취될 것을 시사하기 때문에 한 말이 아니다. 그의 진술의 의미는 명백하다. 이 예언들 중 일부의 성취가 “지금 일어나고” 있고, 다른 것들은 이윽고 “흑암의 세력들과 하늘의 왕자 사이의 대쟁투의 끝”에 성취될 것이기 때문에 그 책은 여전히 연관성이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현대의 재림신자들은 과거의 역사와 예언의 성취로부터 계속해서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은, 그 책들의 대부분이 이미 지나간 시대에 완전한 성취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려와 확신과 동기 유발을 부여하고 있다.

 엘렌 화잇이 그의 저술 가운데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모든 부분을 일일이 논하고 있지는 않다. 그의 가장 포괄적인 제시는 잘 알려진 저서인 각 시대의 대쟁투(The Great Controversy between Christ and Satan)나온다. 예를 들면, 작은 뿔(단 7);용(계 12);표범같은 짐승(계 13):그리고 연관된 때들(세 때 반 = 1260 일 = 42 달 = 1260 년간의 교황의 지상권 기간, 538-1798)은 물론이고, 두 뿔 가진 짐승(계 13)과, “짐승의 우상”에 의하여 강요되는 “짐승의 표”로 상징되는 안식일과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최후의 투쟁에 대하여 그는 확실한 해석을 해주고 있다(GC 438-450을 보라). 이러한 견해들은 역사주의적인 방법과 이 체계를 수용한 우리 선구자들이 도달한 주된 결론들과 입장들을 완전히 찬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은 그의 저술들은 오늘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서 있는 예언적인 토대(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도출된)가 확실함을 증명해 준다.

엘렌 화잇의 저술들이 예언 해석의 다른 방법을 가르치는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특정한 예언들에 대하여 이중 성취를 적용시키는 재림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이 방법에 대한 엘렌 화잇의 인정이 어떤 진술들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을 그들이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언 해석의 새로운 방식을 열어주는 것으로 주장되는 이와같은 가상적인 열쇠들은 그의 방대한 저술의 전체에 걸쳐 산재해 있으며, 근년에 이르러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에서 흔히 사용되는 인용문들을 철저하게는 못할지라도 검토해 보고자 한다.

예시 1
“세상은 전쟁의 정신에 휩쓸리고 있다. 다니엘 11장의 예언들은 그것들의 최후의 성취(final fulfillment)에 거의 도달했다.” — RH 1904. 11. 24, p. 94.
주장: “최후의 성취”라는 구절에 강조점이 있다. 예언에 최후의 성취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그에 앞선 성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답변: 여기서는 어떤 감추어진 이중 혹은 다중 성취의 원칙이 전혀 없다. 엘렌 화잇은 단순히 이 긴 예언의 마지막 부분이 막 성취되려는 것을 주목하고 있을 따름이다. 다니엘 11장은 곧 완결되려 하고 있다(Daniel 11 is about to be completed). 이것이 그 구절의 진정한 의미라는 사실은 5 년 뒤에 그가 “마지막 위기”(“The Last Crisis”)라는 제목의 한 기사에서 동일한 문제를 재진술한 것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세상은 전쟁의 정신에 휩쓸리고 있다. 다니엘 11장의 예언은 그것의 완전한 성취(complete fulfillment)에 거의 도달했다.” — 9T 14(1909년 출판〔강조 첨가〕).

예시 2
“우리는 바야흐로 크고 엄숙한 사건들이 벌어지려는 문턱에 서 있다. 많은 예언들이 신속히 연이어서 성취되려 한다. 각가지 힘의 요소가 작용하려고 한다. 지나간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옛 쟁투들은 새로이 살아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사방으로 위기에 둘러싸일 것이다. 격렬함이 인간 가족을 사로잡고 있다. 그것은 지상의 모든 것 속에 파고들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다니엘서와 관련시켜 연구하라. 왜냐하면 역사는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TM 116(강조 첨가).
다니엘 11장의 예언이 그것의 완전한 성취에 거의 도달했다. 이 예언을 성취하면서 일어났던 역사의 많은 부분이 반복될 것이다.—Lt 103(1904)(강조 첨가).
주장: 주어진 예언을 성취한 역사적 사건들이 반복된다는 것은 곧 그 예언 자체에 이중 성취가 있음을 가리킨다.

 답변: 엘렌 화잇은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라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한다. 그러나 역사와 예언은 별개의 두 가지 문제이다. 역사적 경험의 반복이 또한 동일한 예언의 반복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결론은 그의 의도를 왜곡시킨다.

 엘렌 화잇은, 흡사한 쟁점이 다시 일어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들을 다시 당면해야 하므로, 우리에게 과거의 예언의 성취를 연구하도록一거기에 관련된 원칙들을 연구하도록一권고하고 있다. “옛 쟁투들은 새로이 살아날 것이다.” 우리는 지나간 사건들에 관련된 도전들을 이해함으로써 그러한 쟁점들에 대하여 우리 자신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역사는 참으로 반복될 것이지만, 과거에 이미 성취된 동일한 특정한 예언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다니엘 7:25요한계시록 13:7은 1260 년간의 유럽에서의 교황의 통치 기간 중에 있었던 하나님의 백성의 박해를 다루고 있는 두 예언이다. 우리는 인간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박해가 반복될 것을 안다. 왜냐하면 또 다른 예언이 그러하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계 13:15-17). 그러나 이러한 박해의 반복(반복된 역사)이 다니엘 7:25요한계시록 13:7의 예언들의 반복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충성된 사람들의 생애와 그들의 시대에 그들이 당면했던 문제들一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그것들을 대처했는지一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의 시대에 우리가 직면해야 할 박해를 대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더해 줄 수 있다.

예시 3
“다니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빛은 특별히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해 주어졌다. 시날의 큰 강들인 을래 강변과 힛데겔 강변에서 그가 본 이상들은 지금 성취되는 과정에 있으며, 미리 말해진 모든 사건들은 곧 이뤄질 것이다.”—TM 112-113(강조 첨가).
이 진술은, 다니엘이 8장에 기록된 이상을 본 후에 천사 가브리엘이 그에게 설명한 것과 연결되는 것이다: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단 8:17).


 주장: 엘렌 화잇은 금세기의 초에 사망하였다. 가브리엘과 마찬가지로 그는 분명히 우리로 하여금 그의 시대를 넘어서 미래의 사건으로 향하게 하고 있다.

 답변: 이 단락만을 따로 인용한다면(이 단락을 그의 저술들이나 명백한 신조들의 문맥으로부터 들어내어), 엘렌 화잇이 여기서 다니엘 8장의 이중 성취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 그 장에서 가브리엘은 메대-바사와 헬라 나라가 각각 상징적인 수양과 염소의 성취인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단 8:20-21). 이것은 이제 지나간 역사이다. 그러나 아직도 엘렌 화잇은 다니엘이 8장에서 본 이상들이 “지금 성취되는 과정에 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가브리엘도 역시 성취가 “마지막 때”에 일어나리라고 말했으므로, 그것은 다니엘 8장의 현세적인 또는 이중적인 성취가 기대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은 엘렌 화잇이 위의 글을 쓸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과, “지금 성취되는 과정에 있다”고 말할 때 그가 지칭한 그 이상의 특수한 측면을 무시하는 것이다.

 재림교회 일반과 더불어 엘렌 화잇은 교황의 압제 기간인 1260 년을 B.C. 538년으로부터 A.D. 1798년까지로 믿었다. 이 예언적인 기간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양(兩) 책에 세 가지의 시간 상징들로 언급되어 있다: (1) 세 때와 반 때一단 7:25; 12:7; 계 12:14; (2) 1260 일一계 11:3; 12:6; (3) 마흔 두 달一계 11:2; 13:5. 따라서 엘렌 화잇과 선구자들은 1798년부터 인간의 시련기〔은혜의 시기〕의 끝까지의 기간을 가브리엘 천사가 말한 기간인 “마지막 때”라고 믿었다. 재림전(조사) 심판은 이 시기에 일어나는 것이고, 첫째 천사의 기별로서 발표될 것이었다(단 7:9-10, 13-14; 계 14:6-7). 이 점에 대한 엘렌 화잇의 명확한 진술들을 주목해 보라:

“다니엘은 마지막 때, 곧 이 세상에 첫째 천사의 기별이 전파되어야 할 때까지 봉인된 그의 증언을 전해야 할 처지에 서 있었다.”—TM 115(강조 첨가).
“1798년 이후로 다니엘서가 개봉되고, 예언들에 관한 지식이 증가되었으며, 많은 사람이 심판이 가까웠다는 엄숙한 기별을 전파해 왔다.”—GC 356.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왔다는 것을 선포하는 요한계시록 14장의 기별은 마지막 때에 주어졌다.”—2SM 107(강조 첨가).
“다니엘과 요한의 예언적 이상들은 도덕적 흑암과 타락의 기간을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에, 이상은 말해져야 하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할 것이다.”—5T 9-10(강조 첨가).
위의 말들에 비추어볼 때, 엘렌 화잇이 다니엘이 본 계시들(단 8)이 “지금 성취되는 과정에 있다”고 한 말은 그가 그의 당시에 하늘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인간의 시련기〔은혜의 시기〕가 마칠 때까지 계속될 재림전 대조사 심판(단 7-8)을 가리켜 말한 것임이 명백하다. 그가 교회로 하여금 수양, 수염소, 네 뿔, 그리고 작은 뿔에 대하여 이중 성취를 보도록 인도하는 하나의 감춰진 방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니엘이 을래 강변에서 본 이상에서 지금까지도 성취되는 과정에 있는 국면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원한 나라를 얻는 일과 재림하시는 일에 앞서 그가 지성소에서 심판하시는 봉사에 관계된 것이다. 땅 위에는 세 천사의 기별(계 14:6-14)이 온 지구의 거민들에게 “그〔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계 14:7)고 외치면서, 때의 긴박성(緊迫性)을 계속해서 알리고 있다.

예시 4
“안식일 문제는 온 세계가 한 몫을 담당할 대쟁투에서 쟁점이 될 것이다.〔계 13:4-8, 10 인용〕이 장 전체가 분명히 일어날 일에 대한 계시이다계 13:11, 15-17 인용〕.” — Ellen G. White
Comments, 7BC 979;MS 88(1897)(강조 첨가).
주장: 이 구절은 엘렌 화잇이 예언의 이중 해석을 승인했다는 “결정적인 논증”(“the clincher”)으로 인용되고 있으며, 이럴 경우에 1260 년 예언의 재연을 문자적인 1260 일로 보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구절에서 엘렌 화잇이 요한계시록 13:4-8, 10을 인용하고 있는 것에 유의하기 바란다. 본문은 일곱 머리에 열 면류관을 쓴 표범같은 짐승으로 상징된 교황권을 묘사하고 있다. 이 구절은 또한 그것이 상처를 입기 전에 지상권을 행사하는 시간적인 요소, 즉 예언적인 마흔 두달 또는 예언적인 1260 일에 대한 것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면 독자들의 주의는 그 성경 구절에 뒤따라 나오는 진술에 이끌리게 된다: 이 장 전체가 분명히 일어날 일에 대한 계시이다”(강조 첨가).

 이 두 가지 점의 연결로부터 다음과 같은 입장이 추론된다: 교황권의 1260 년간의 이력은 지나갔다. 그러나 지금 엘렌 화잇은 이 “장 전체” —마흔 두 달이라는 시간적인 요소도 포함하여一가 분명히 일어날〔미래 시제〕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우리 시대에 연관성이 있게 하는 방법으로 그 책들을 해석하기 위하여 이중 성취 원칙을 사용하기 위한 명확한 증거가 여기에 있다.

 답변: 엘렌 화잇의 이 진술이 요한계시록 13:1-10이나 그 기간에 대한 이중 성취에 어떠한 근거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이 진술을 그 배경 안에서 읽기만 하면 된다. 만약 독자들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 주석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요한계시록 14장에 대한 언급으로 기록된 이 두 문단의 인용문 내용을 훑어 내려갈 때 함께 따라서 보기 바란다.

 소위 “결정적인 논증”이라고 하는 것의 문맥은 그 앞 문단에서 시작하는데, 거기서 엘렌 화잇은 먼저 짐승의 표와 우상에 대한 셋째 천사의 경고인 요한계시록 14:9-10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의 요점을 이렇게 말한다: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두려운 위협을 피할 수 있을지를 이해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이 된다. 왜 사람들은 짐승의 표와 그의 우상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에 관심이 없을까?〔강조 첨가〕. 그것은 하나님의 표와 직접적으로 대조되는 것이다.” 그는 그러고 나서 안식일이 하나님의 “표지”(“sign”) 또는 표(mark)라고 하는 출애굽기 31:12-17을 인용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짐승의 표”란 안식일과 반대되는 어떤 것임을 암시한다. 그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한다:

 안식일 문제는 온 세계가 한 몫을 담당할 대쟁투에서 쟁점이 될 것이다”(강조 첨가). 바로 여기서 그는 요한계시록 13:4-8, 10을 인용한다.

 이 구절은 사람들이 짐승의 정체를 알 수 있게 하는 정보를 다음과 같이

 제공해 준다: 그것의 기원/권세는 용으로부터 나옴; 그의 마흔 두 달 간의 특별한 통치 ; 그 기간 동안 그것이 성도를 핍박함; 하늘(Heaven)에 대한 그것의 참람됨: 그것의 사로잡힘; 그리고 세계가 다시 그의 지도를 숭상하고 따를 것이라는 사실, 등이다. 이러한 자료에 기초하여 사람들은 그 짐승이 교황의 세력임을 확실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엘렌 화잇이 그의 진술의 첫 문단에서 그들에게 촉구한 바대로 짐승의 표와 우상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다 갖다 놓는다.

 요한계시록 13:4-8, 10(짐승의 정체를 알려주는 정보를 제공하는)을 인용하고 나서, 엘렌 화잇은 “이 장 전체가 분명히 일어날 일에 대한 계시이다”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는 곧바로(설명을 통하여) 요한계시록 13:11, 15-17을 인용한다. 이 성경절들은 두 뿔 가진 짐승(11절)이 일어날 것과, 그 짐승의 우상의 기구, 그리고 불매(不買) 동맹과 죽음의 형벌로써 짐승의 표를 강요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리하여, 엘렌 화잇이 “이 장 전체가 분명히 일어날 일에 대한 계시이”다라고 말한 것이 요한계시록 13:4-8, 10에 이중 성취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님이 매우 확실하다. 그러한 의미를 강요하는 것은 이 진술을 그 문맥에서 억지로 떼어내는 것이다.

 그녀의 화제는 요한계시록 13:1-10 또는 그 해당 기간의 이중 성취가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주제는 “짐승의 표”와 마지막 때에 있을 그것의 강요이다. 그것이 이 인용문의 두 문단이 말하는 핵심이다. 요한계시록 13:4-8을 인용하는 유일한 목적은 독자들이 짐승의 정체를 알게 하는 것이다. 만일 독자들이 짐승의 정체를 알 수 있다면, 그의 표가 무엇인지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인데, 그녀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표지와 반대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같이 짐승과 그의 표에 대해서 말하고 나서, 그녀는 짐승의 우상과 그의 표의 강요, 그리고 미래에 그 문제를 둘러쌀 위기, 등을 다루는 예언적인 예측을 보여주고 있다.

예시 5
 마태복음 24장의 그리스도의 강화(講話)에 관한 진술들. 다음의 사항들이 일반적으로 주목을 끈다:

“그분〔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언급하셨을 때, 그의 예언의 말씀은 그 사건을 넘어 최후의 대화재(大火災)에까지 미쳤다.” — DA 628.
“그러나 이 예언은 또한 마지막 시대를 위해서도 말씀하신 것이다.”—DA 631.
“이 예언은 다시 성취될 것이다.”—DA 633.
“예루살렘의 파괴로 부분적인 성취를 본 이 예언들은 마지막 시대에 더 직접적인 적용을 보게 될 것이다.”—MB 120-121.
주장: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그리스도의 예언이 세상의 멸망 때에 이차적인 성취를 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 진술들에서 추론된 것이다.

 이 예시(例示)에 의하면, 엘렌 화잇은 묵시적 예언의 이중 성취를 실제로 가르쳤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답변: 우리 주님의 감람산 강화(마 24)에 관한 시대의 소망산상보훈의 여러 인용문들을 위한 배경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의 재림의 큰 날을 따로 분리하여 그의 제자들에게 대답하시지 않았다. 그는 이 두 사건에 대한 묘사를 섞어서 말씀하셨다. 만일 예수께서 자신이 보신 대로 장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제자들에게 공개하셨다면, 그들은 그 광경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대한 자비로 그는 두 개의 큰 위기를 혼합하심으로써 제자들이 스스로 그 뜻을 연구하도록 남겨 두셨다. 그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언급하셨을 때, 그의 예언의 말씀은 그 사건을 넘어 세상을 그 불의로 인하여 심판하시고자 그의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그 날, 땅이 그의 피를 드러내고 죽임을 당한 자들을 이상 더 숨기지 못할 그 날에 있을 최후의 대화재(大火災)에까지 미쳤다. 이 모든 강화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장면들 가운데 살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주어진 것이다.”—DA 628(강조 첨가) ; 631쪽도 보라.
먼저, 우리 주님의 강화(講話)가 두 개의 구별된 사건들을 취급했다는 사실을 엘렌 화잇이 명백히 이해하고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한 사건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관계된 것이고, 하나는 재림과 세상의 끝에 관한 것이다. 그는 두 심판이 유사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 둘에 관한 묘사를 혼합(混合)하셨다. 이 두 사건이 한 강화에 혼합되어 있으므로, 그 예언은 당시의 제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마지막 때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가치가 있다. 여기에 무슨 반복 성취의 원칙이 발표된 것은 아니다. 주께서 논하신 각 사건은 그것 자체의 일정한 시기(時期)에 그것 자체의 일회적 성취(成就)를 가진다. 즉, 예루살렘의 멸망이 있고, 후에 시대의 마지막에 세상의 몰락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 주님의 강화(講話)와, 시대의 소망 및 산상보훈에 나오는 엘렌 화잇의 언급들의 내용이 모두 마태복음 24장이 이중성취를 가진 단 하나의 예언이 아님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두 개의 구별된 사건들(뚜렷한 유사성 때문에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상징으로 보여짐)을 다루는 이중적인 예언이며, 각 사건은 그것 자체의 시대에 성취될 것이었다. 따라서 마태복음 24장은 물론, 그것에 대한 엘렌 화잇의 언급들도 거기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위한 이중 성취의 원칙을 끌어낼 만한 마땅한 근거는 제공하지 않는다.

예시 6
“복음의 위대한 사업은 그 시초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능력에 못지 않은 큰 능력이 나타남으로 마쳐지게 될 것이다. 복음 사업의 시초에 이른비가 내림으로 성취된 예언들은 그 사업의 종말에 늦은비가 내림으로 다시 성취될 것이다.” 一 GC 611-612.
주장: 이른비(오순절)의 예언은 늦은비가 부어짐으로 이중 성취를 보게 될 것이다.

 답변: 성령의 부어짐에 대한 엘렌 화잇의 언급들은 마태복음 24장에 대한 그의 언급들과 비슷하다. 위에 인용된 글의 바로 윗 문단에서 엘렌 화잇은 호세아 6:3요엘 2:23을 인용한다. 두 구절 모두 두 사건, 즉 이른비와 늦은비를 예언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에 자연적인 우기(雨期)들이 있는 것과 꼭 같은 것이며, 이것으로부터 성경의 비유적 표현이 취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엘렌 화잇이 인용하는 이들 두 예언은 오순절에 하나의 성취〔이른비〕를 보았고, 복음 사업이 그 피날레(finale)를 장식할 때 자연스럽게 다른 하나의 성취〔늦은비〕를 보게 될 것이다.

 요약: 이 여섯 예시들은 어떤 재림교인 성경 학도들이 엘렌 화잇이 이중 성취의 원칙을 지지한다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애쓰면서 사용하는 진술들 중에서 그럴 듯한 표본들이다. 우리는 정직함과 공정의 정신을 가짐으로써, 역사주의적 방법의 유력한 대표적 인물로 서 있는 분의 저술들을 곡해하여 그와는 반대되는 이중 또는 다중 성취의 이론을 가르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잘 지켜야 한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억지로 주장된 진술들을 공정하게 검토해 볼 때, 우리는 이중 또는 다중 성취의 원칙이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예언들을 설명하는 도구로서 사용되도록 주어진 적이 전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엘렌 화잇과 이중 성취안 지지자들
 1890년대에 소수의 재림신자들은 세 천사의 기별(계 14)의 미래의 성취를 주장하고 있었다. 엘렌 화잇은 그러한 시도들을 책망하고 그 지지자들을 오도(誤罰)된 자들로 간주하였다.
“그리스도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대에도 성경을 그릇 읽고 그릇 해석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
“이러한 기별들이 아직도 미래에 관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 기별들의 진실성은 파악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예언적 역사에서 차지하는 올바른 위치에 두는 일에는 실패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사람들은 그 기별들의 위치를 찾아주는 일에 있어서 사람들을 그릇 인도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들은 마지막 때, 즉 그 기별들을 적용해야 할 때를 보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다.”—Ev 612-613(강조 첨가).
“새벽 1시 반 이후로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주께서 T 형제를 위하여 나에게 주신 기별을 그에게 전할 참이었다. 그가 취하고 있는 특이한 견해들은 진리와 오류의 혼합물이었다.∙∙∙ 예언적인 역사에 대한 우리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진리의 위대한 이정표들은, 허물어뜨려지거나 참된 빛보다는 혼란을 가져오는 이론들로써 대치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간수되어야 한다.
“성경을 연구하는 가운데 큰 빛과 새로운 이론들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한 두 사람이 있었으나, 이러한 것들은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 성경은 온통 참되나 사람들이 성경을 잘못 적용함으로써 그릇된 결론에 도달한다. ∙∙∙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때에 적용할 수 있는 진리를 취하여 미래에다 적용시킬 것이다. 먼 과거에 벌써 성취된 예언들의 연속 가운데 있는 사건들이 미래로 바꿔지고 있는데, 이리하여 이 이론들 때문에 어떤 이들의 믿음이 침해를 받는다.”
“주께서 나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 빛에 비춰볼 때, 그대는, 이미 이뤄졌고 또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의 역사에 있어서 그 시대를 위한 그것들의 특수한 사업을 완수한 진리들을 다른 사람들 앞에 제시함으로써 동일한 일을 행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대는 성경 역사에 나타난 이런 사실들이 참되다고 인정은 하지만, 그것들을 미래에다 적용시킨다. 그것들은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를 오늘날의 우리로 만들어 준 일련의 사건들 가운데서 여전히 그것들의 정당한 자리를 차지한 채 그 효력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그와같은 모양으로서 오류의 흑암 속에 있는 자들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의 선구자들에게〕주의 인도하심은 현저하였으며, 무엇이 진리인지를 드러내는 그의 계시들은 매우 놀라웠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진리의〕요점들이 하나씩 하나씩 확립되었다. 그때에〔저자의 강조〕진리였던 것은 오늘날에도 진리다. 그러나 ”
이것이 진리다. 나는 새 빛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음성들은 그치지 않고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예언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이러한 새로운 빛들은 말씀을 잘못 적용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을 붙들어 줄 닻도 없이 표류하도록 함으로써 그 모습이 드러나고 만다.”—2SM 101-104(강조 첨가).
결 론
 엘렌 화잇과 다니엘서 및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의 해석에 관한 본 연구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이 두드러진다:

 1. 엘렌 화잇은 중요한 두 책의 예언들을 해석함에 있어서 분명하게 역사주의적 방법을 지지한다.

 2. 엘렌 화잇의 저술들에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어떤 예언들을 현재의 상황에 재적용하는 현행의 관례를 지지하는 방법, 곧 임의의 문단들 속에 감춰진 이중 성취의 원칙이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3. 엘렌 화잇은 그와같은 예언들에 대해 이중 성취를 부여하려는 시도들을 거부한다. “먼 과거에 벌써 성취된 예언들의 연속 가운데 있는 사건들이 미래로 바꿔지고 있는데, 이리하여 이 이론들 때문에 어떤 이들의 믿음이 침해를 받는다.” — 2SM 102.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우리가 “마지막 때,” 즉 인간의 시련기〔은혜의 시기〕의 끝마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엘렌 화잇과 더불어 우리는 역사주의적인 방법과 조화되게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일을 더듬어 보았다. 과거에 성취된 예언들은 하나님께서 소수의 남아 있는 부분들도 성취시키시리라는 굳은 신뢰를 우리에게 준다. 이 예언들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를 두고 벌이는 하늘과 암흑의 권세들 사이의 최후의 쟁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슨 그릇된 열정이 지금 우리의 예언 해석 방법을 바꾸도록 우리를 강요하려 하는가? 우리 가운데 몇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예언들이 “첫번째” 성취보다도 더 중요하게 간주되는 다른 성취들一그와같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겉치레 찬사(lip service)를 보내는 성취들一과 함께 어떻게 재연되어야 할지를 추측하도록 부추기는 그 충동의 본질은 무엇인가? 만약에 그와같은 추측을 따른다면, 우리는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을 붙들어 줄 닻도 없이 표류하도록”(2SM 104) 버려둘 것으로 믿는다.

 본 연구에 비춰볼 때, 만일 엘렌 화잇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그녀는 이중 성취의 개념을 채택함으로 생겨난 결과로서 교회에 밀어닥친 왜곡된 해석에 대하여 개탄할 것으로 확신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녀가 자신의 저술들이 그러한 오류를 지지하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요구했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가 다음과 같이 부연(數術)했을 것으로 믿는다: ‘만일 그대들이 주께서 성경 예언에 관하여 나에게 계시해 주신 것을 알기 원한다면, 여기 있는 한 문단 또는 저기 있는 한 줄로부터 어떤 감취진 원칙을 끌어내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주요 부분들이 다루어져 있는 나의 책 각 시대의 대쟁투를 읽으십시오. 여기에 우리 시대를 위한 예언적 진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