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17:1~19:10 — 바벨론의 멸망 2. 바벨론에서 나오라, 그리고 노래하라
 슬픈 일이지만 바벨론에 머물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이 경고가 자신들에 대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너희들은 하나님의 율법들을 지킬 필요도 없고 지켜서도 안 되며 지킬 수도 없다는 사단의 기만에 안심하고 있다.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계 18:7) 한다. (459.3)
 안식일을 범하는 일은, 마치 에덴 동산에서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것같이 사소하고 심지어는 바람직한 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창조주와 구세주에 대한 충성이 거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459.4)
 3, 4, 5, 세 개의 애가(哀歌)
 우리는 453페이지에서 마지막 시대에 “온 세상의 왕들”이 짐승을 지원하여 마지막으로 열심을 내어 진정한 하나님의 경배자들을 탄압하고 그 후에는 심한 배신감으로 노엽게 되어 음녀와 싸우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제 요한계시록 18장을 보면 왕들과 상인들과 뱃사람들이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하고 울부짖고 있는데, 이때 이들은 “멀리 서” 있었다고 한다(계 18:9). 즉 이들과 바벨론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는 말이다. (459.5)
 이들 왕과 상인들과 뱃사람들은 애곡은 하고 있으나, 바벨론 죄의 공범자로서 그들 자신의 죄악들을 애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왕들은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계 18:8)른 것, 즉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갑작스러움을 애통하고 있는 것이다. 상인들과 “배 부리는 모든” 사람들은 그(바벨론)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부요하게 되고,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 하였었는데 이제 그 엄청난 상품들이 일시에 잿더미가 되었으므로 애통하였다(계 18:18, 15).(이 인용 구절의 시적(詩的)인 표현들은 구약 성경의 표현에서 빌어 온 것으로서 상업적인 이들을 뜻하는 하나의 단위로 취급되어야 한다). 왕과 상인과 뱃사람들 중 어느 하나도 그녀(바벨론)의 죄악들과 악마적 행위에 대해서, 또는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계 18:24)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459.6)
 아마 우리에게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20절에 나타나 있는바 뱃사람들의 비통한 애가일 것이다. (459.7)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459.8)
 마지막 줄의 충분한 의미는 번역에 잘 나타나 있지 않다.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한다면 “하나님의, 너희들에 대한 그(바벨론)의 심판을 심판하였다” 이다. 즉 바벨론이 수세기에 걸쳐 하나님의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거짓되게 정죄하였다는 것이다. 바벨론은 성도들을 파문하고 국가에 넘겨 처형을 받게 하였다. 그는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금하고, 신학자들과 교회 회의의 주장을 성경의 주장보다 더 중히 여김으로써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거짓 증거를 자행했다. 이와같이 바벨론은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심판하고 거짓으로 증거하였다. (460.1)
 그러나 최후 심판의 첫 단계인 재림 전 심판이 1844년에 시작되었다. 다니엘 7장“작은 뿔”인 동시에 데살로니가후서 2장“불법의 사람”으로 예표되는 바벨론과 진정한 성도들, 즉 하나님을 경배하노라고 주장해 온 각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요한의 묵시에서처럼 이같은 선언이 반포될 때까지 조사를 받게 된다. 그리고 바벨론이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거짓되게 심판했으나, 이제 하나님이 그 압제적인 심판을 심판하고 그 정죄를 정죄하며 박해받는 자를 위해 그 압제자를 제거하신다. 거짓 증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과시켰던 선고를 이제 하나님께서 그 거짓 증인들에게 부과시키시는 것이다. (460.2)
 구약 성경에는 이 같은 원칙이 정해져 있다. 학자들은 신명기 19장 16~19절에 있는 “위증법”(僞證法)을 거론한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고소하면 양인을 모두 재판장에 서게 했다. 만일 고소인이 위증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재판장은, 위증자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꽤한 대로 그에게 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G. B. 케이어드(Caird) 교수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관찰을 피력하고 있다. (460.3)
바벨론은 순교자들에게 위증을 하였으며 그 결과 그들의 죽음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참되고 공정한 심판이 이행되는 최고 법정인 “하나님 앞”으로 이관되었다. 바벨론의 위증죄가 드러났으며 따라서 하나님은 바벨론이 순교자들에게 강요한 처벌을 바벨론에게 강요하고 바벨론이 죽인 희생자들의 생명을 바벨론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4
(460.4)
 6. 힘센 천사의 노래
 요한계시록은 처음부터 장면이 수없이 바뀌어지지만 18장 21절에서 또 다시 묵시 장면이 갑자기 바뀐다. 한 “능력 있는 천사”가 등장한 것이다. 보통의 천사들이 가진 능력과 영광을 고려할 때, 이 천사의 모습은 과연 어떻했을까? 그는 손에 “맷돌 같은 돌을” 들고 있었다. 이 맷돌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들 수 없는 대단히 무거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 맷돌을 들어 힘차게 바다에 던졌다. 맷돌이 요란한 물결을 일으키며 바다에 떨어질 때, 이 천사는 분명한 음성으로 외쳤다.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460.5)
 요한은 이때 틀림없이 다니엘 시대의 한 사건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스라야는 고대 바벨론의 유브라데 강변에 서서, 두루마리를 펴 바벨론 성에 대한 예레미야 51장의 예언을 낭독한 다음 그 두루마리를 다시 말아서 돌을 매단 후 유브라데 강물에 던졌다. 이 두 사건은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돌과 맷돌의 차이다. 차이가 있다면 중동에 위치한 한 “세계”를 다스리던 1 평방 마일 정도의 고대 바벨론과, 마지막 때에 세상에 있는 모든 거짓 종교를 대표하는 현대 바벨론의 차이이다. (460.6)
 그러나 느브갓네살 왕이 메소포타미아로 붙잡아 간 수만 명의 유대인들과,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계 18:24)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460.7)
 유브라데 강이 말라 바닥이 나고 고레스의 군대가 바벨론 성으로 진입하여 벨사살 왕을 살해하고 유대인들을 해방시킨 그 밤과, 바벨론에 대한 전세계의 지원이 바닥 나고 세상 임금들이 그들을 오도한 종교 지도자들과 더불어 전쟁을 하고, 그리스도가 하늘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 왕들과 부자들과 상인들과 및 그를 대적하는 자들을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의와 평화의 율법을 범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버리려고 작정한 수많은 참된 성도들을 구원하시는 때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460.8)
 7. 하늘에서 들리는 환호의 노래
 또 하나의 대조가 나온다. 요한은 상인들과 왕들과 뱃사람들보다 아득한 높이에서, 그리고 바벨론의 폐허의 연기보다 더 아득한 높이에서 들려 오는 큰 소리를 들었다. 그의 귀에는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같이” 들렸다. (461.1)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계 19:1, 2).
(461.2)
 요한이 얼굴을 들어 어디서 소리가 들려 오는지 둘러보니 하늘의 합창대가 같은 주제를 반복해서 노래하는 것이었다. (4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