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17:1~19:10 — 바벨론의 멸망 2. 바벨론에서 나오라, 그리고 노래하라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계 19:3)
(461.4)
 “할렐루야”(Halleliah)는 히브리 어로서 “여호와 또는 야훼(jah 또는 yah), 당신(You)를 찬 양하나이다”(hallel)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희랍식 철자를 따라 “알렐루야”(alleluia)로 표기되는 예가 가끔 있다. (461.5)
 성도들은 큰 성이 화염에 싸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들의 기쁨은 상인들과 국왕들과 뱃사람들의 애곡과 대조를 이룬다. 우리들은 그들의 기쁨을 넉넉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은 그렇게 기뻐해도 되는 것인가? 처벌이 가해지는 광경을 성도들이 보고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좋게 보실까?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까지도 성도들의 그 같은 태도를 정당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계 19:4)라 하였다. (461.6)
 그러나 큰 성 바벨론이 불에 탈 때 일어난 이 같은 열광을 하나님은 어떻게 느끼셨을까? 만일 요한도 같은 궁금증을 느꼈었다면 그는 그 대답을 듣기 위해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461.7)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배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계 19:5).
(461.8)
 마치 지휘자가 합창단과 합류하여 노래할 것을 청중에게 청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그 결과는 가히 극적이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다시금 하늘의 할렐루야 찬송을 화답하였다. (461.9)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 19:6).
(462.1)
 이와 같이 하나님은 악의 근절을 기뻐하는 우리의 모습을 좋게 보신다. 하나님은 죄인이 처벌되는 것보다는 죄인이 회개하는 쪽을 훨씬 더 바라신다. 그분은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겔 33:11)신다. 그분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 3:9). (462.2)
 그러나 만일 백성들이 그들의 죄를 고집한다면 다시 말해서 죄인들이 계속해서 이웃들과 속이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고 땅을 더럽힌다면, 하나님도 별도리 없이 죄를 근절할 때 죄인들도 함께 진멸하실 수밖에 없다. 그분은 죄 없는 자들의 안전과 기쁨을 보장하기로 결심하셨다. (462.3)
 “보좌에서” 한 음성이 나서 성도들과 천사들을 고무하여 공동의 적을 진멸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케 했다. (462.4)
 신부의 결혼
 그러나 요한의 묵시에는 바벨론이 불타는 광경 말고도 그 이상으로 기쁘게 노래할 대상이 또 있었다. (462.5)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신부)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의 옳은 행실이로다”
(계 19:7, 8).
(462.6)
 폭포 같던 노래 소리가 드디어 잠잠해지자, 그 동안 내내 요한을 수행하였던 친절한 재앙의 천사가 다음과 같이 요한에게 강조하여 말하였다.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계 19:9). (462.7)
 영국의 차알즈 황태자와 다이아나 양의 혼인 잔치에는 고작 2,500 명만이 초청을 받았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초청을 받고 싶어 했는가! 그러나 우리는 어린 양의 혼인식에 이어지는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았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신다”(계 22:17). (462.8)
 요한계시록에서 거짓 종교의 상징으로 사용된 바벨론은 한때 실제로 존재했던 도시였다. 어린 양의 신부인 새예루살렘 역시 실지의 한 도시였는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사랑과 진리와 거룩함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섬기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전체 무리를 상징하고 있다. 혼인 가운인 “깨끗한 세마포”“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상징한다. (462.9)
 그리스도는 조사 심판의 끝에 새예루살렘과 “혼인한다.” 이때 그리스도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로부터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는다(단 7:14). 대심판일 곧 대속죄일은 하나님의 교회를 성결케 하며, 이 교회를 깨끗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충만하게 하며, 전적으로 진실하고 하나님의 모든 기대에 충성을 다하도록 한다. “그 아내(신부)가 예비하였”다. (462.10)
 왕국은 “아내(신부)”이며 “거룩한 성”이다. 새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인간 왕국을 대표한다. 마치 런던이 영국을 대표하고 캔버라가 호주를 대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새 예루살렘에 거처를 갖고 있는 개별적인 신자들은 혼인 잔치에 “손님”으로 초대된다. (463.1)
 하늘에서의 혼인식이 절정을 이룬 직후에, 예수께서는 이 땅으로 오셔서 그의 백성들을 혼인 잔치로 데려가신다. 모든 사람들을 식탁에 앉게 한 후에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그의 종들을 위해 접대한다(눅 12: 35, 37). 하늘과 땅인들 놀라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정복자 그리스도, 하늘 구름을 타신 인자가 옛적부터 항상 계시는 이로부터 나라를 받을 때, 우리들에게 기쁜 잔치를 베푸심으로써 그 기쁜 행사를 경축하시는 것이다! (463.2)
 성도들에게는 이 모습이 얼마나 감격적인 광경이겠는가! 얼마나 우리를 겸허하게 하고 기쁨을 주는 경험이겠는가! 실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다. (4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