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재림 시에 구원받은 사람들을 함께 하늘에서 데리고 오실 것이라고 말했는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에 대한 한 유력한 해석에 의하면 재림 때에 예수께서는 의인들의 “몸 없는 영혼”들을 하늘로부터 함께 데리고 오셔서 부활한 그들의 육체와 재결합하게 한다고 한다. (507.1)
 만일,

 (1) 문제의 성경절이 말하는 바가 진정코 그렇다면, 그리고

 (2) 그리스도인들이 죽을 때 “몸 없는 영혼”만이 진실로 하늘에 가는 것이라면, 위의 해석은 정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07.2)
 그러나 우선(1) 항부터 살펴보면, 문제의 성경절은 예수님이 재림 때에 몸 없는 영혼들을 데리고 온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성경절은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하였다.(공동 번역에서는,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데려 가실 것을 믿습니다로 되어 있다:역자 주). 이 성경절이 뜻하는 기별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케 하시고 그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신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대행자이신 “예수님을 통하여”(한글 번역에는 없음:역자 주) “예수 안에서 자는” 그리스도인들을 부활시키시고 그들을 무덤으로부터 “데리고 오시”겠다는 것이다. (507.3)
 하나님이 어떻게 이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행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구절들, 특히 16, 17절에 잘 설명되어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라.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을 향하여 다시 살아나라고 호령하실 때 하나님이 그들을 무덤에서 일으키실 것이다. (507.4)
 (2)항 즉, 우리가 죽을 때 혹은 “잠들” 때에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75~79, 212~2181 페이지의 논의를 참고하기 바란다. (507.5)
 2. 천년기는 글자 그대로 일천 년간을 뜻하는가?
 요한계시록이 여러 가지 상징들로 된 책이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20장의 일천 년도 문자적인 의미이기보다는 상징적일 가능성이 있다. 만일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기별을 감안할 때 천년기는 일천 년 이상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제안이 가능해진다. 지금까지의 우리들의 연구에 의하면 천 년기의 목적은 아래의 두 가지이다. 즉,

 (1) 지상에 있는 사단과 그의 동료 반역자들에 대한 처벌,

 (2) 하늘에 있는 구원받은 무리들에 의한 심사(재판)이다.

 하나님의 자비의 본성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은 사단을 쇠사슬로 묶어 두는 기간을 길게 잡기보다는 짧게 잡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하나님의 지혜의 본성에 비추어 보아도 구원받은 성도들이 정당하게 이루어진, 지상의 거민들에 대한 심판 기록을 감사하는 데에 일천 년씩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에 미루어 보아도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필요로 하는 대답을 언제나 즉각즉각 주시리라고 추측된다. (507.6)
 천년기를 하루는 일년으로 계산하는 원칙에 근거하여 365,000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년/일 원칙은 근본적으로 다니엘 8장 14절의 2,300주야와(2,300주야라 했는데 주야는 한 날을 뜻한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1,260일(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번이나 언급되었으며 두 번은 정확히 1,260일로 기록했다)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0장의 예언은, “1,000 일”에 대해서, 더우기 “365,000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하나의 유일한 예언적 실재로서 “천 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시편 90장 4절의 말씀도 여기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이 말씀은 특정한 천년기에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의 모든 천 년 기간들에 해당된다. 또 천 년이 실제로 하루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는 모든 세월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지 거의 2,0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께는 단지 한 이틀 정도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후로 이틀 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 한 일일 것이다. (508.1)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에 대하여 어떻게, 무슨 이유로 여차여차하게 해석하라는 명확하고도 강력한 지침이 없는 이상, 우리로서는 그 기간에 대한 성경 자신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그 천년기가 실제로 당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간이 문자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명확하게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리라고 생각된다. (508.2)
 3. 천년기에 대한 주요 해석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473페이지에서 이미 천년기에 대한 세 개의 주요 해석들을 소개했다. 즉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무천년설(amillennialism)이 그들이다. 전천년설의 몇몇 갈래에 대해서도 일별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508.3)
 전천년설(前千年說, Premillennialism). 주후 3, 4세기까지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 저술가들은 전천년주의자들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전천년(premillennium)의 전(전:pre)이라는 말은 “앞에”, “전에”라는 뜻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속히, 천년기 전에 문자 그래도 재림하실 것으로 믿었다. (508.4)
 로마 제국이 이교의 통치자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특별히 이 정권이 교회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기간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약속된 대로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보좌에 앉아 세상을 심판할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의 재림뿐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전천년주의자들이었다. (508.5)
 무천년설(無千年說: Amillennialism). 주후 313년에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는 밀라노 칙령을 교회에 반포했다. 주후 325년에는 교회 역사상 가장 중요한 회의의 하나였던 니케아 교회 회의(Council of Nicaea)를 주재했다. 336년에는 그 자신이 세례를 받았다. 380년과 381년에는 데오도시우스 대제(Theodosius the Great)가 로마 제국의 모든 시민들에게 삼위 일체를 신봉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요구하였다! 400년 대 초에 이르러서는 그리스도인 병사들만으로 로마 군대를 편성하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교회의 감독(監督)들은 이제 높은 위신과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508.6)
 이러한 배경 하에서 처음에는 “이단”인 도나투스 파(Donatist)의 티코니우스(Tichonius)가, 그 다음에는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가, 천년기는 이미 시작되 었다는 주장을 가르쳤다.12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교회 감독들이 이미 감독의 보좌에 앉아 심판을 하고 있으며 이로써 요한계시록 20장 4절의 예언은 성취되고 있다는 것이다. (508.7)
 따라서 미래에 천년기가 오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무천년설(ammillennialism)의 무(a)는 “아니다”,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천 년이 있을 뿐이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509.1)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전체적인 입장의 한 부분으로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입장도 가르쳤다. 그에 의하면, 문자적인 의미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기 직전인 천년기의 끝에는, 3 년 반 동안 박해를 자행할 한 인물이 등장할 것인데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라 하였다. (509.2)
 그리스도교 신앙적 규범은 타분야에서 얻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막대한 영향력에 힘입어 그의 무천년설 주장도 중세기에는 독무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전천년설도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따금씩 머리를 쳐들곤 하였다. (509.3)
 종교 개혁 시대의 천년설. 종교 개혁 시대(1500년 대) 초기의 대부분의 개신교 저술가들은 여전히 무천년주의적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아우구스티누스 식의 무천년주의는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천년기의 마지막에 가깝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또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교 로마의 형태로 이미 나타났으며 년/일 원칙에 의해 1,260년으로 계산되는 1,260일 예언도 끝나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13 교회 사의 어두운 측면에서 볼 때 “적그리스도”가 로마 교회로 성취되었다는 신념과 년/일 원칙은 종교 개혁의 품질 증명서와도 같은 것이다. (5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