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아비의 미래주의적 전천년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의 주장을 온전히 따른 것은 아니다. 수년에 걸쳐서 그의 미래주의 노선을 지지해 왔던 많은 보수주의적인 개신교 복음주의자들도, 하나님은 오직 하나의 특별한 백성 곧 자신의 교회를 갖고 계시다고 주장해 왔다. 그들은 다아비가 주장하는바 하나님의 특별한 두 백성, 즉 그의 교회와 유대인들이란 발상을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갈라디아서 3장 26~28절을 인용하여 주장 하기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없이 ∙∙∙다 예수 안에서 하나이라” 하였다. 또 많은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성경 어디에도 환난 전 비밀 휴거(pre-tribulation secret rapture)를 가르치는 곳은 없으며 오히려 예수님이 재림할 때 “각인이 그를 볼 것이요”(계 1:7)라 했다고 한다. (511.7)
 이와 같이 영국의 재림 운동은 여러 가지 형태의 미래주의적 전천년설을 발생시켰다. 한편 북미에서 일어난 재림 운동은 최신형의 역사주의적 전천년설을 발전시켰다. 미국의 역사주의적 전천년설은 천년기가 시작될 때 단 한 번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꾸준히 주장했다. 이 주장은 근대의 학문적 수단을 이용하여 종교 개혁자들의 년/일 원칙에 유리한 증거들을 증가시켰으며 작은 뿔과 불법의 사람에 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해석이 옳았다는 사실을 확산시켰다. 미국의 역사주의적 전천년설은, 또 영국 종교 개혁의 네째 계명에 대한 강조와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봉사에 대한 관심을 존중하였다. 이 전천년설은, 2,300년/일의 끝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하늘 성소 봉사를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가르쳤다. 그리고 또 이 주장은 네째 계명의 제칠일 안식일의 특권들에 대한 주의를 촉구했다. 이리하여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의 지지자들이 생겼다. (512.1)
 전천년설에 대한 요구가 들어남
 다아비가 사망한 1882년과 경제 대공황이 발생한 1930년 대 사이에, 때때로 사회 복음이라고 일컬어지는 후천년설의 한 형태가 미국의 많은 진보적이고 근대적인 신학자들과 목사들을 사로잡았다. 가난한 새 이주민들은 미국의 대 산업 도시들에서 극심하게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들의 필요에 부응하여 사회 개혁을 요청하는 수많은 설교와 책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미국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만들기 위하여, 또 “인간의 눈물에 의해 흐려지지 않”“설화(雪花) 석고의 도시”를 만들기 위하여, 그리고 결국 그리스도의 재림을 불필요하게 만들기 위하여, 사회적 행동주의와 사회 법령을 요청했다. (512.2)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들, 특히 소도시의 주민들은 재림의 “복된 소망”으로 빛나는 그런 설교와 책들을 갈망하였다. (512.3)
 여러 가지 형태의 전천년설들이 이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형태의 전천년설들은 대 재림 운동의 결과였으며 그 모두가 재림을 계속 강조하였다. 그 한 형태인 역사주의적 전천년설은 가르치기를,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하나님이 교회를 보살펴 온 역사를 통하여 실현되었으며 이 같은 예언 성취의 기록은 오늘을 살아가는 남녀들에게 많은 교훈과 용기를 준다고 하였다. 또 이 주장은, 예수님이 2,300일의 끝에 하늘 성소에서 시작한 심판에 관심을 촉구하였다. 또 백성들에게, 새언약 하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안식일 계명의 특권을 포함한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기쁘고 즐겁게 순종할 수 있도록 인치신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기쁘게 십계명을 지키도록 촉구하였다. (512.4)
 그러나 미래주의 전천년설, 특히 다아비식의 미래주의 전천년 주장은 하늘 성소에 대해서보다는 중동 지역에 유대 성전을 재건하고 희생 제사와 할례 의식을 다시 시작하는 문제에 더 열심을 내었다. 제칠일 안식일은 분명히 개종한 유대인들에 의해서 준수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비록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라도 잘못된 일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512.5)
 이제 전천년적 재림을 갈망하는 수많은 미국인들은 안식일을 제쳐 놓은 형태의 전천년설을 신봉하고 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살펴 온 하나님의 돌보심의 기별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실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전천년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 준수를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으로 제한시킴으로써, 비록 성령의 도움이 있다손 치더라도 사실상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네째 계명을 지킬 수도 없고 지킬 필요도 없으며 지켜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512.6)
 그들은 말하기를, 제칠일 안식일은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한다. 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일종의 율법주의 이므로 그들은 안식일을 지켜서는 안 된다고 한다. 또 인간의 “원죄”를 생각할 때 어쨌든 그들은 안식일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512.7)
 이 미래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은 중동과 미래의 유대 성전에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현재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특별한 일을 등한시할 위험에 처해 있다. 이와 같이 이들은 중세 교회가 저질렀던 과오를 반복하는 데에까지 가까이 이르렀다. 아마도 이들은, 중세 교회에 대한 성서 예언은 아무 것도 없다는 다아비의 교리 때문에 무의식 중에 이 같은 입장으로 빠져 버린 것 같다. (513.1)
 필자의 이 책이 의도하는 여러 가지 목적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미래주의적 전천년설 외에 더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513.2)
 References

 1. Charles R. Erdman, The Revelation of John(Philadelphia:The Westminster Press, 1966), p. 152.

 2. Uriah Smith, The Prophecies of Daniel and the Revelation, rev. ed.(Mountain View, Calif.:Pacific Press Publishing Assn., 1944). p. 739.

 3. Tertullian, On Prescription Against Heresies, 36;ANF 3:260, says that Peter endured a passion like his Lord’s Compare John 21:18, 19.

 4. Arthur S. Maxwell, Great Prophecies for Our Time(Mountain View, Calif.:Pacific Press Publishing Assn., 1943), pp. 290~292.

 5. Ibid.

 6. 이 스탠자(연)는 보통 존 뉴톤(John Newton)의 “자비로운 주 하나님”의 가사로 불리고 있는데 “자비로운 주 하나님”의 원전인 Olney Hymns(London:W. Oliver, 1779)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1984년 11월 19일, 저자에게 띄우는 편지에서 웨인 후퍼(Wayne Hooper)는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정보로는 그것이 존 P. 리즈(John P. Reese)에 의해 기록 되었다고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7. Ron Miller and William K. Hartmann. The Grand Tour:A Traveler's Guide to the Solar System(New York:Workman Publishing, 1981), P. 43.

 8. See Arthur Whitefield Spalding, Christ's Last Legion(Washington:Review and Herald Publishing, 1949), pp. 752, 753.

 9. Miller and Hartmann, Grand Tour, p. 177.

 10. Two books that discuss aspects of various millennial views are Millard J. Erickson, Contemporary Options in Eschatology: A Study of the Millennium(Grand Rapids, Mich.:Baker Book House,1977) and Robert G. Clouse, ed., The Meaning of the Millennium:Four Views, with contributions by George Eldon Ladd, Herman A. Hoyt, Loraine Boettner, and Anthony A. Hoekema(Downers Grove, Ill.:Inter Varsity Press, 1977).

 11. See, For example, Clouse, ed., Millennium, p. 9.

 12. See LeRoy Edwin Froom,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4 vols.(Washington, D.C.: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n., 1946–1954) 1:465–489. Augustine’s views are preserved in his City of God, bk, 20, esp. chs. 6~9;NPNF, 2d ser., 2:425~ 431.

 13. B. W. Ball, The English Connection(Cambridge, England:James Clarke, 1981), pp. 202, 214, 215,

 14. Ibid., p. 214, 216;compare Froom, Prophetic Faith, 2:610, 611, 542~549.

 15. Ball, English Connection, p. 202. See also Bryan W. Ball, A Great Expectation:Eschatological Thought in English Protestantism to 1660, Heiko A. Oberman, ed., Studies in the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12(Leiden:E. J. Brill, 1975).

 16. Ball, English Commection, pp. 102~119; 138~158; Winton U. Solberg, Redeem the Time(Cambridge:Harvard University Press, 1977), pp. 27–80.

 17. Solberg, Redeem the Time, pp.54, 58. 대부분의 영국인 안식일 준수자들은 “안식일”을 일요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신학과 행실은 네째 계명을 도덕적이고 구속력 있는 것으로 강조함으로써 제칠일 안식일 준수의 길을 마련하였다.

 18. Danial Whitby announced his postmillennialism in his A Paraphrase and Commentary om the New Testament, 2 vol., 2d ed.(London, 1706), 2:715~742.

 19. Ball, English Connection, p. 205.

 20. See Ernest R. Sandeen, The Roots of Fundamentalism, reprint(Grand Rapids, Mich.:Baker Book House, 1978), pp. 64, 90;and Dave MacPherson, The Incredible Cover-up(Plainfield, N.J.:Logos Intemational, 1975).

 21. 미래주의적 전천년주의의 두 가지 형태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W. Graham Scroggie, The Great Unveiling(Grand Rapids, Mich.:Zondervan Publishing House, 1979)과 그것을 강력히 반대하는 George Eldon Ladd. The Last Things(Grand Rapids, Mich.: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 1978)를 보라. Sandeen, Roots of Fundamentalism, pp. 208~ 232는 초기 단계에 있었던 논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22. Katharine Lee Bates, “America the Beautiful”, 1904, The Church Hymnal,(Washington, D.C.: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n., 1941), no. 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