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우편에서 하나의 두루마리를 본다.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 있다기보다 오른편 보좌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고대 근동에서 보좌는
“하나의 자리가 아니고 흡사 소파 같”았다.
18) 그래서 한 사람 이상이 그 위에 앉을 수 있었다. 왕의 오른편에 앉는 것은 최고의 영광으로 간주되었다. 인봉된 두루마리는 하나님 우편 보좌에 와서 그것을 취하고, 그 자리에 앉을 합당한 후보자를 기다리고 있다. 두루마리를 취하여 열 수 있는 능력은 통치권을 대표할 것이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왕이 보좌에 올랐을 때, 그는 왕관과 함께 언약의 두루마리를 받았다. 그 두루마리는 바로 신명기였으며(
왕하 11:12; 신 17:18-20; 삼상 10:25 참조), 또한 그것은 보좌 등극의 상징이 되었다. 두루마리를 받은 새 왕은 보좌에 앉아 통치를 시작할 것이었다. 두루마리를 소유하여 그것을 펴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통치권과 발생 가능한 어떤 위기 상황을 대처할 권한이 왕에게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동시에, 언약 두루마리 소유는 이스라엘의 왕이 위대한 왕이신 하나님과 공동 통치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우리는 시편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의 공동 통치자로서 그의 우편에 앉는 장면을 읽는다(
시 80:17; 110:1).
인봉된 두루마리가 하나님의 오른손 안에 놓여 있기보다는 우편 보좌 위에 있었음을 아는 것은 그 사건을 바르게 해석하는 데 중요하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우편에”(
롬 8:34; 엡 1:20; 골 3:1; 히 10:12; 벧전 3:22) 있는 하늘 보좌 위에서 높임을 받으셨음은 특별히 중요하다. 이와 같이 그분은 모든 권세와 능력과 우주적 통치권을 받으셨다(
엡 1:20-22; 히 1:13; 벧전 3:22).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우편의 보좌에 오르셨다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핵심적인 믿음이었고(
행 2:33-36; 히 8:1), 구약 예언의 성취였다(
시 110:1; 마 22:41-45; 26:62-65 참조).
두루마리는 당시의 법적 문서의 형태로 기술되어 있다. 우선, 요한은 두루마리가
안팎으로 기록되었다고 말하는데, 대개 그것은 기록된 자료가 매우 많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구약에서 언급되었던 것으로서 양면에 기록된 두 문서를 가리킬 것이다.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증거의 두 돌판”이라는 말을 읽는다. 모세가 산에서 가져온 것에는 “그 판의 양면 이편 저편에 글자가 있었다(
출 32:15). 마찬가지로 에스겔은 묵시 가운데서 그의 앞에 펼쳐진 두루마리를 보았는데,
“그 안팎에” 글이 있었다(
겔 2:9-10). 이러한 구약적 배경에 비추어,
요한계시록 5장에 기록된 두루마리의 양면 중에서 분명히 한 면에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체결 된 언약이 있을 것이고, 또한 다른 면에는 예언적 기별이 있을 것이다.
19) 그리고 신약적 문맥에 따르면, 두루마리는 분명히
“율법과 선지자”와 관련이 있다(
행 13:15; 마 5:17; 요 1:45 참조).
또한 두루마리는 요한 당시에 널리 사용되었고, 잘 알려진 형태의 소위
‘이중문서’였을 가능성도 상당이 있다(
계 5:1의 어구 해설 참조), 두루마리의 열린 부분은 바깥 본문으로서 인봉 되지 않았고, 언제든지 볼 수 있었다. 더 긴 부분은 안쪽 본문인데, 인봉되어 있었다. 인봉된 부분은 적법한 관청에서 그 모든 인을 깨뜨려야만 개봉될 수 있었는데, 그 곳에서 내용이 비교되고 그 진실성이 입증될 수 있었다. 만일 인봉된 두루마리가 이중문서라면,
요한계시록 10장의 작은 두루마리의 역할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두루마리는
요한계시록 5장의 인봉된 두루마리의 바깥쪽 눈에 보이는 본문에 해당될 것이다. 작은 두루마리의 내용은 분명히
요한계시록 12장 1절부터
22장 5절에 기술되어 있으며,
요한계시록 5장의 인봉된 두루마리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두루마리는 또한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다고 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인들은 오로지 왕과 그의 신하들만이 소유하였다. 인침은 두 가지 기본적 개념, 즉 내용물의 인정이나 비준을 의미한다. 그것은 기록된 내용의 끝에 권세자의 도장이나 반지로 인을 쳐야 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인침은 사인을 대신하는 기능을 하였고, 문서의 신빙성, 효력, 또는 비준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5장의 문맥은 또 다른 개념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음을 강력히 암시한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인침’은 하나님의 계시가 정해진 때까지
‘간수’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 이유는 백성이 불성실하고 하나님의 계시에 주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 12:4, 9; 계 10:4).
요한계시록 5장의 두루마리가 인봉된 것은 그것의 내용을 덮어서 감추어 두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두루마리는 인봉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도
“능히 그것을 펴거나 보거나 할 수 없”다(
계 5:3-4). 모든 봉인이 깨뜨려지기까지는 두루마리를 열어 그 내용을 공개하는 일은 불 가능하다.
두루마리가 일곱 인들로써 인 쳐졌다고 하는 사실은,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숫자가
‘충만’,
‘완성’ 또는
‘완전’이라는 상징적 의미에 비춰볼 때 특히 중요하다.
첫째,
‘일곱’은 하나님의 충만과 총체성의 개념을 드러낸다.
둘째, 일곱 인으로 인 친다함은 두루마리가
‘완전히 인쳐졌’ 음을 의미한다.
비록 본문에서(
5:3-4 참조) 두루마리의 내용이 감춰졌음을 많이 강조하고 있을지라도, 전체 문맥은 일곱 인을 강조한 근본 목적이 단순히 요한계시록의 독자들에게 두루 마리의 내용이 매우 비밀스럽다거나 인간의 지식으로부터 숨겨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함이 아님을 나타낸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 본장의 주요 초점이 인봉된 두루마리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인들을 깨뜨리고 여는 것에 있다는 사실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을 엿볼 수 있다. (
5:2, 5, 9). 인봉된 두루마리 자체는
5장에서 개봉되지 않고
6-8장에서 개봉된다. 칠중의 인침을 매우 강조한 근본 목적은 우주에 있는 모든 피조물의 총체적인
‘합당치 않음’과 무능력을 하나님의 총체적인 충만과 그리스도의
‘합당하심’ 및 그분의 능력과 대조하려는 것이다. 온 우주에서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우주의 보좌에 좌정 하실 수 있으며, 종말적 주권자로서 이 지구의 역사를 끝내실 수 있다.
요한계시록 5장의 문맥은 두루마리가 인봉된 것은 인간적 요인, 즉 인간의
“합당치 않음”과 무능력 때문이었음을 시사한다.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라는 질문은(
5:2)
“하늘이나 땅 위에나 땅 아래의 아무도 그 두루마리를 펴서 그 봉인들을 깨뜨리기에 합당치 않았다”는 필연적인 결론을 내리게 한다(
5:2-4). 이 사실은 매우 강력히 강조되었다. 또 한 편으로는,
요한계시록 5장 5절의 힘찬
“보라”(한글 성경에는 없음-역자 주)는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요” “죽임당하신 어린양"이 봉인된 책을 취하시고, 그 인봉을 떼시려고 나타나실 때의 신적 합당 함과 전능을 말하는 대목의 시작이다. 두루마리를 취하신 후, 그리스도께서는 왕에게만 속하는 온 하늘 무리들의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되신다(
5:11-14).
요한 당시의 유대인들은 다윗의 보좌에서 하나님과 공동 통치자로서 다스리는 이스라엘 왕들의 왕권과 권세를 의미했던 언약의 책을(
신 17:18-20; 왕하 11:12) 다윗 왕국이 붕괴되고 바벨론 유수 동안 인봉된 것으로 간주하였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인봉’된 것은 이스라엘 왕들과 그들이 통치했던 백성의 합당치 못함'과 불성실로 기인된 것이다(
사 8:16; 단 12:4, 9). 그 인봉은 이스라엘의 이상적이고 참된 왕의 역할을 할 다윗의 후손이 미래에 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 4:1-11:19 개관 참조),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왕으로서 오실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이 구약적 개념 위에 구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