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장
단 9:1-2 (9:1-2)
(어구(語句) 해설)
다니엘 9: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이 ∙∙∙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年數)를 깨달았나니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있는 히브리 포로들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과 거짓 선지자들이 이 포로들과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의 사본이 참과 거짓 간의 투쟁의 이야기와 함께 예레미야 27장부터 29장에 나와있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계시된 모든 내용을 선지자가 책에 기록하도록 지시를 받은 것은 예레미야와 포로된 이스라엘의 장로들 간의 이러한 편지 교환이 있은 직후였다. 이 사실이 예레미야 30장과 31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 장들은 25장과 함께 선지자 다니엘이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에 기도로써 연구하던, 기록된 지 60여 년이 지난 편지와 기록들이다.” — 4BC 1157-1158; RH 1907. 3. 21.

 “바벨론 가운데서 하나님께 충성스럽게 남아 있던 사람들이 주님을 찾으며 그들의 구원을 예언한 예언들을 연구하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회개한 백성들에게 은총을 나타내기 위하여 왕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고 계셨다.”—4BC 1172; RH 1907. 3. 21.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거의 70 년 동안 이스라엘은 포로 생활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택하신 땅은 이교도의 손에 넘어갔다. 사랑받던 성, 하늘의 빛을 받으며 한 때 온 세상의 기쁨이었던 도시가 이제는 경멸당하게 되고, 그 품위는 땅에 떨어졌다. 하나님의 언약의 궤와,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을 지니고 있던 성전은 황폐되었다. 바로 그 장소는 불경한 발길들로 더럽혀졌다. 이전의 영광을 알고 있던 신실한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 구분지어 주던 그 거룩한 집이 황폐된 것을 보고 심히 괴로워하였다. 이 사람들은 그 백성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고발의 증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의 증인들이었다. 그들은 또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 앞에 공손히 행하기만 한다면 내려주실 은총의 약속의 증인들이기도 하였다. 연로한 백발의 순례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 폐허 가운데서 기도하였다. 그들은 주님께 시온에 그분의 긍휼을 보이시고, 그 성을 그분의 의(義)의 영광으로 덮으시기를 탄원하면서 그 돌들에 입을 맞추고 눈물을 흘렸다.”— 4BC 1172; RH 1897. 2. 9.

 “70 년 포로 기간의 끝이 다가옴에 따라서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에 그의 마음을 크게 기울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또다른 시험을 주실 시간이 다가왔음을 보고 금식과 겸비와 기도로써 하늘의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끈질기게 청원하였다.”—RH 1881. 2. 8; Art 1:260.

단 9:3-6 (9:3-6)
(어구(語句) 해설)
다니엘 9: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주 하나님께
 다니엘 9장에 기록된 기도는 하나님을 오랫동안 섬겨오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한 사람이 드린 기도이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한 죄인으로서 서서, 그분의 사랑하신 백성의 절박한 필요를 위하여 탄원하였다. 그는 매우 열렬하였기 때문에 그의 기도는 단순하면서도 웅변적인 것이었다.”—MS B-203(1903. 9. 14).

 “하늘은 선지자의 열렬한 기도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니엘이 용서와 회복을 위한 탄원을 마치기도 전에 힘센 가브리엘이 다시 다니엘에게 나타나 그가 바벨론의 함락과 벨사살의 죽음 이전에 보았던 계시를 주목하게 하였다. 그 후에 천사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때부터 시작될 칠십 주일의 기간을 다니엘에게 자세히 설명하였다.” — PK 556.

 “다니엘의 기도와 자백의 모본은 우리에게 교훈과 격려로서 주어진 것이다. ∙∙∙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에 정해진 시간이 거의 마친 것을 알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약속하셨으니 그들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금식과 통회로써 그는 주님을 찾았으며, 그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자백하였다.” — 4BC 1172; RH 1897. 2. 9.

 “다윗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나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시 42:1; 84:2; 119:20, 40〕라고 부르짖으며 드린 기도처럼 가장 열렬하고 뜨겁고 번민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이것이 시편 기자〔다윗〕왕이 소유했던바 씨름하는 기도의 정신이다.”

 “다니엘은 자신을 높이거나 아무 선함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 하였다. ∙∙∙ 이것이 바로 야고보가 말한〔의인의〕 간구(effectual, fervent prayer, 약 5:16)이다. 〔성경에는〕그리스도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하였다〔눅 22:44〕. 하늘의 주권자가 드린 이러한 간구와, 연약하고 무심하게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기도와는 얼마나 비교가 되는지! 많은 사람들이 말뿐인 예배에 만족하고 있는 한편, 신실하고 열렬하며 애정깊게 하나님을 찾는 이들은 별로 없다.” — 4T 534.

 “오, 우리에게 맡겨진 사업이 얼마나 엄숙하고 중요한가. 이 사업의 결과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가! 그것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힘과 지혜를 우리가 어떻게 얻겠는가? 다니엘이 주님을 찾았듯이 우리도 그분을 찾아야 한다. 다니엘은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했다〔단 9:3〕고 선언한다. 우리는 겸손과 통회로써, 우리의 죄를 자복하며, 서로 긴밀히 연합된 가운데 주님을 찾아야 한다. 형제 자매들이여,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기도하라. 다니엘 제9장을 읽으라. 선지자는 기도하였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단 9:19〕.” — MS 38(1905. 3. 27).

 “여전히 이스라엘을 위한 부담을 가지고 다니엘은 새로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연구하였다. 이 예언은 매우 명백하였으며, 그가 책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단 9:2〕는 이 증언으로 매우 분명히 깨달았다.”

 “확실한 예언의 말씀 위에 기초를 세운 다니엘은 이 약속들의 신속한 성취를 위하여 믿음으로 여호와께 간구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보존되기를 간구하였다. 그는 그의 탄원에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목적에 미치지 못한 사람들과 동일시하였고, 그들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자복하였다.”

 “선지자는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였다〔단 9:3-4〕고 선언하였다. 비록 다니엘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였고 하늘로부터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단 9:23〕는 말을 들었으나 이제 그는 한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 자기가 사랑하는 백성의 큰 필요를 역설하였다. 그의 기도는 단순하면서도 웅변적이었고 극히 열렬하였다.” — PK 554-555.

다니엘 9: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참된 위대함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을 낮춤으로 하나님께서 높이신 사람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높은 지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을 명예롭게 하는 것은 의와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앞에 겸손히 행하며 통회하는 심령으로 그들의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받는 현명한 사람들을 부르신다.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고백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지금 이뤄지고 있는 영혼의 황폐는 머지않아 뽐낼 만한 일과는 거리가 먼일이 될 것이다.”—MS K-271(1904. 7. 29)(켈록〔J. H. Kellogg〕 의사에게 보낸 편지).

단 9:7-17 (9:7-17)
(어구(語句) 해설)
다니엘 9: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주여, 공의(公義)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羞辱)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충실함을 내세우지 않는다. 이 존귀히 여김을 받은 선지자는 자기가 깨끗하고 거룩하다고 주장하는 대신에 겸손하게 자기를 이스라엘의 실제 죄인들과 동일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주셨던 지혜는 마치 정오의 하늘에서 비치는 햇빛이 가장 미약한 별빛보다 밝은 만큼이나 세상의 대인들보다 훨씬 더 탁월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받은 이 사람의 입술에서 나오는 기도를 깊이 생각하여 보라. 그는 깊은 겸비와 눈물로써, 그리고 마음을 찢으며 자신과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간구한다. 그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자백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위엄을 인정하면서 그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열어 놓았다.”

 “그의 탄원이 얼마나 열렬하고 진지한가! 믿음의 손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결코 변함이 없는 약속들을 붙잡기 위하여 위로 뻗쳐진다. 그의 영혼은 번민 속에서 고투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기도가 상달된 증거를 가지며, 승리가 그의 것임을 알고 있다. 만일 우리가 전체로서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하며, 다니엘이 기도했던 것처럼 기도하고 그가 씨름했던 것처럼 씨름한다면, 우리는 다니엘에게 주어졌던 것과 같은 명백한 응답을 깨닫게 될 것이다.”—SL 46-47.

다니엘 9:8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수욕(蓋辱)이 우리에게 ∙∙∙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다니엘은 자신이나 그의 백성들에 대하여 변명하려 하지 아니하고 겸손과 영혼의 통회 가운데 그들의 불법의 죄과를 전부 자복하였으며, 하나님의 요구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그분의 간원(懇願)에서도 이익을 얻지 못한 한 국가를 대하시는 그분의 방법에 있어서 그분의 공의로우심을 옹호하였다.”

 “오늘날에도 바로 이와 같은 신실하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회개와 자복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그들의 영혼을 낮추지 않은 자들은 받으심의 첫번째 조건도 성취하지 못한 것이다.” —5T 636.

다니엘 9: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이 저주자 우리에게 내렸으되
단 9:18-19 (9:18-19)
(어구(語句) 해설)
다니엘 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주여, 들으소서
 “하나님께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는 확증에도 불구하고 자고와 교만에 차지 않았던 다니엘의 기도 가운데는 매 마디마디에 하나님을 찾는 영혼의 갈망이 나타나 있다. 그분의 지혜를 갈구한다. 다니엘의 기도는 긴급하다. 그것은 응답이 거절되는 것과 지체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단 9:19〕.” — MS D-45(1897. 11. 15).

단 9:20-23 (9:20-23)
(어구(語句) 해설)
다니엘 9:20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내자 이같이 말하여
 “예루살렘의 황폐의 70 년이 마칠 때를 찾는 다니엘의 비애와 부끄러움을 주목해 보라. 그는 다니엘 9:2-19과 같이 선언한다.”

 “중보의 영이 다니엘에게 임하여 그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하여 열렬히 기도하며 무한한 능력의 보좌를 붙잡았다. 온 하늘이 그의 탄원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의 기도가 마치기 전에 하늘의 궁정으로부터 한 사자가 그에게 보냄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단 9:21, 22, 23, 25 인용〕.”

 “다니엘은 하나님의 영예가 보존되기를 간구하였다. 그의 기도가 들으신 바 되고 그분의 반역한 백성들을 위하여 주께서 다시 한번 자비를 베푸셨다.”—MS 138, 139(1899. 9. 27).

 “다니엘의 기도가 계속되고 있을 때에 가브리엘 천사가 그의 간구가 들려진 바 되고 응답되었다는 소식을 그에게 전하기 위하여 급히 내려온다. 이 능력 있는 천사가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전할 사명, 곧 그의 앞에 미래의 각 시대에 대한 오묘를 공개할 사명을 받았다. 이와같이 다니엘이 진리를 알고 깨닫기 위하여 애쓸 때, 그는 하늘에서 파견된 사자와 교통하게 되었다.”

 “다니엘은 자기가 드린 간구의 응답으로서 자기와 자기 백성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빛과 진리뿐 아니라, 장래의 큰 사건들과 심지어는 세상의 구속자의 강림에 대한 전망까지도 얻게 되었다. 성화되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성경을 탐구하거나 성경의 진리를 좀 더 명확히 깨닫기 위해 하나님과 기도로써 씨름하고자 하는 욕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참된 성화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다니엘은 하나님과 더불어 이야기하였다. 하늘 나라가 그의 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높은 명예는 겸손과 진지한 간구에 대한 결과였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다. 하나님은 진리의 창시자이시다. 그분께서는 어두워진 이해력을 밝혀주시고, 사람의 마음에 그분께서 나타내신 진리를 파악하고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 SL 48-49.

다니엘 9: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내자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교회에 엄습할 무서운 박해가 다니엘의 계시에 나타났을 때 그는 육신의 기력을 잃어버렸다. 그가 이상 더 견딜 수 없게 되자 천사는 얼마 동안 그에게서 떠나갔다. ‘다니엘이 혼절하여 수일을 앓다가 일어나서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단 8:27〕.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천사에게 ‘이 이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단 8:16〕고 명령하셨다. 그 사명은 완수되어야 할 것이었다. 천사는 그 명령을 따라 얼마 후에 다시 다니엘에게 와서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단 9:22-23〕고 말하였다. 8장에서 해석되지 않고 남아 있는 중요한 한 가지 점은 때에 관한 것, 곧 2300 일의 기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천사가 그 해설을 다시 할 때, 그는 때에 관한 문제에 치중하게 되었다.“—GC 325.

다니엘 9: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바벨론의 궁정에서 그가 유혹에 굴복했더라면 그를 파멸시켰을 영향들에 둘러싸여 있는 다니엘을 생각해 보라. 다니엘은 고매한 성도였다. 음모자들은 도처에 있었다. 그들은 그 고상한 총리에게서 불충한 점을 찾고자 열심히 관찰하였으나, 그의 오점없는 기록에서 아무 흠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고귀한 원칙과 흠없는 명예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칭하셨는가? ‘크게 은총을 입은 자여.’ 누구에 의하여〔은총을 입었는가〕?—‘너의 기도가 들으신 바 되었다’라고 만족해 하는 타락하지 않은 우주에 의하여.” — B5B 91.

단 9:24-27 (9:24-27)
(어구(語句) 해설)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칠십 이레
 “유대인을 위하여 배당된 70 주일, 곧 490 년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A.D. 34년에 끝났다. 그 때에 유대의 산헤드린이 취한 태도, 곧 스데반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함으로 복음을 거절한 것은 국가로서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복음은 그 택함받은 국민에게만 제한되지 않고 온 세계에 전파되었다. 제자들은 박해 때문에 부득이 예루살렘에서 도망하여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다〔행 8:4〕.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였다〔행 8:5〕. 또한 베드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이사랴에 사는 백부장,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고넬료에게 복음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스도의 믿음을 받아들인 열렬한 바울은 그 기쁜 소식을 ‘멀리 이방인’행 22:21〕에게 전하라는 사명을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예언에 열거된 사건들은 놀라울 정도로 모두 성취되었다. 그리고 70 주일은 의심할 여지 없이 B.C. 457년에 시작되어 A.D. 34년에 끝났다. 이 사실을 근거로 2300 일의 끝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300 일에서 70 주일 곧 490 일을 떼어내면 1810 일이 남는다. 490 일 후에 계속하여 1810 일도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A.D. 34년에다 1810 년을 더하면 1844년이 된다. 그러므로 다니엘 8:14의 2300 일은 A.D. 1844년에 마치게 된다. 이 긴 예언적 기간의 끝에 ‘성소가 정결하’여지리라고 하나님의 천사는 증거하였다. 그리하여 예수의 재림 때에 일어날 것으로 거의 보편적으로 믿어지던 ‘성소의 정결’의 시기가 이제 확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 GC 328(DA 233 참고).

정하였나니
 “이 때에 천사는 다니엘이 8장에서 이해하지 못한 점, 곧 때에 관한 것,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8:14〕고 한 말씀에 대하여 설명하여 줄 지급(至急)한 목적으로 다니엘에게 보내심을 받았다. 천사가 다니엘에게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단 9:23〕고 명한 후에 곧 이어서 한 첫 말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다〔단 9:24〕는 것이다. 여기서 ‘정하였다’고 번역된 단어는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잘라냈다’〔cut off〕는 의미이다. 천사는 490 년을 상징하는 70 이레가 유대인을 위하여 특별히 잘라낸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어디로부터 잘라낼 것인가? 2300일이 8장에 언급된 유일한 기간이므로 70 주일을 그 기간에서 잘라내야 한다. 그러므로 70 주일은 2300 일의 일부분이며, 그 두 기간은 동시에 시작하여야 한다.”—GC 326(GC 419 참고).

쇠악이 영속(永續)되며(to make reconciliation)
 “∙∙∙ 화목(reconciliation) 이란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모든 장애물이 제거되고 죄인이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이 무엇임을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치르신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받아들이는 범죄자를 정당하게 용서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심령으로부터 죄인의 심령에 흘러내리는 자비와 사랑과 의의 통로가 되셨다.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요일 1:9〕이다.” — 1SM 396.

 “그분의 택하신 대리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게도 그분의 뜻을 알리실 것이다. 그 때에 구속의 위대한 사업이 진척될 것이다. 사람들은 죄악의 영속(永聽)과, 메시야께서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가져다 주신 영원한 의에 대하여 배울 것이다. 갈바리의 십자가는 위대한 중심이다. 이 진리에 기초하여 행하면, 그리스도의 희생은 그 효과를 낼 것이다. 이것이 다니엘의 열렬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가브리엘이 보여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변형(變形)되셨을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이야기한 것은 바로 이것에 관한 것이었다. 십자가의 굴욕으로 말미암아 그분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주심과 함께 영원한 구원을 가져다 주실 것이었다.”—4BC 1172-1173; Lt 201(1899).

다니엘 9: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중건(重建)하라는 영(令)이 날 때부터
 “천사는 70 주일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릴 때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 영이 내린 때를 알 수만 있으면, 2300 일의 기산점(起算點)이 확정될 것이었다.”

 에스라 7장에 이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가장 완전한 형태의 조서는 B.C. 457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내렸다. 그러나 에스라 6:14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건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세 왕은 조서를 처음으로 만들고, 다시 확인하고, 완성시킴으로써 2300 년의 시작을 알려주는 예언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게 되었다. 조서가 완성된 B.C. 457년을 칙령이 내린 연대로 잡을 때, 70 주일에 관한 예언의 세부적인 사건들이 모두 성취된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단 9:25〕. 즉 69주일, 곧 483 년이 지난다는 뜻이다.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가 효력을 발생한 때는 B.C. 457년의 가을이다. 그 때로부터 483 년을 지나면 A.D. 27년이 된다. 그 때에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 ‘메시야’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 해 가을에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사도 베드로는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하셨’다〔행 10:38〕고 증거하였다. 구주께서도 친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셨다[눅 4:18〕고 말씀하셨다. 주께서는 침례를 받으신 후 갈릴리로 가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4-15〕고 하셨다.”—GC 326-327(DA 233 참고).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
 “다니엘은 그분이 메시야라고 그대에게 말해줄 것이다.” — DA 579.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기별을 주어서 제자들에게 내보내셨다. 그 기별은 다니엘 9장에 근거한 것이었다. 천사는 69 주일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리라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원대한 희망과 즐거운 기대를 가지고 메시야의 왕국이 예루살렘에 건설되어 온 세계를 지배할 날이 오기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GC 345.

 “그리스도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대에도 성경을 그릇 읽고 그릇 해석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만일 유대인들이 진지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했을 것 같으면 그들은 성경연구를 통하여 그 당시의 진상과 그리스도의 초림의 시간뿐만 아니라 그 방법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주님의 초림으로 잘못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다니엘의 증언과 이사야와 그밖의 다른 선지자들의 증언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의 교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들 가운데 계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분의 강림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하여 성경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언 상으로 그들이 할 것이라고 말한 바로 그 일들을 그리스도를 상대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였다.” — Ev 612-613.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경건은 없이 종교의 형식만 남겨두고 있는 것은 사단의 책략에 부합된다. 복음을 거절한 후에도 유대인들은 옛적부터 내려오는 의식들을 계속적으로 고수하기 위하여 열심을 다하였고, 그들의 배타적인 민족적 특성을 엄격히 보존하여 왔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이미 그들 가운데 나타나지 아니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니엘의 예언이 명백하게 메시야의 오실 시기를 지적하였고 그분의 죽으심을 직접적으로 예언하였으므로, 그들은 그 예언의 연구를 단념하게 되었고, 마침내 랍비들은 때를 계산하여 알아보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저주를 선언하였다. 눈멀고 완고한 상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의 은혜로운 선물을 무관심하게 대하고, 복음의 축복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하늘에서 오는 빛을 거절하는 일의 위험성에 대한 엄숙하고 두려운 경고들에 유의하지 아니한 채 1800 년의 세월을 보냈다.”—GC 378.

 “그리스도의 초림 당시에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고 있었으므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언약되신 분의 오심을 어쩌면 선포할 수도 있었다. 미가의 예언은 그분의 출생지를 알려 주었고〔미 5:2〕, 다니엘은 그분의 초림의 시기를 분명하게 밝혀 주었다〔단 9:25].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런 예언들을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주셨으므로 그들이 메시야의 오심이 임박하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 사실을 백성들에게 전하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그에 대하여 핑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의 무지는 죄스러운 태만의 결과였다. 유대인들은 세상의 위대한 인물들에게 경의를 표함으로 사단의 종들에게 복종하는 한편, 순교당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위하여서도 기념비를 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세속적 지위와 권력을 쟁탈하기 위한 투쟁에 몰두하였으므로 하늘의 임금께서 주시는 거룩한 영광을 잊어버렸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심오하고 경건한 관심으로써 세계 역사상 최대의 사건, 곧 인류의 구속 사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는 장소, 시기, 환경, 등에 관하여 연구를 하고 있어야 했다. 모든 사람들은 세상의 구속자를 영접하는 최초의 무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고대하고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먼 나사렛의 산골로부터 베들레헴까지 찾아간 두 사람의 피곤한 여행자는 그 마을의 좁은 길을 동쪽끝까지 걸어가면서 밤 동안에 쉴 곳과 잘 곳을 찾았으나 끝내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들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문을 열어 주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비천한 한 외양간에 숙소를 정하였는데, 거기서 세상의 구주께서 탄생하셨다.”—GC 313.

성(城)이 중건(重建)되어
 “∙∙∙ 건축 공사는 꾸준히 진전되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두달이 못 되어 성읍은 방벽으로 둘렸고, 건축자들이 성벽 위를 거닐면서 패배해서 놀란 원수들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PK 657.

곤란한 동안에
 “∙∙∙ 예루살렘의 방벽을 복구하는 일은 방해를 받지 않고 진행되지는 않았다. 사단은 반대를 일으켜 그 사업을 단념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이 반대 운동에 있어서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 등 그의 주요 대리자들은 이제 직접 재건 공사를 방해하고 나섰다. 그들은 그 사업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며 실패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건축자들의 노력을 조롱하였다.”—PK 641.

다니엘 9: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꼲어져 없어질 것이며
 “공의는 인간의 고통을 요구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고통으로 갚아주셨다. 그분은 자신을 위한 고통의 속죄를 필요로 하지 않으셨으며, 그가 당하신 모든 고난은 다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그분의 모든 공로와 거룩하심이 타락한 인간에게 선물로 개방되어 주어져 있다.” — 7BC 913;Lt 12(1892).

다니엘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한 이례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할〔단 9:27〕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1 주일은 70 주일의 마지막 1 주일이다. 그것은 특별히 유대인에게 배정된 최후의 7 년간을 의미한다. 이 기간, 곧 A.D. 27년에서 34년까지의 기간에 그리스도 자신이, 후에는 그분의 제자들이 특별히 유대인에게 복음의 초청을 하였다. 사도들이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나갈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6〕고 명령하셨다.” — GC 327(DA 233 참고).

그 이례의 설반에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다〔단 9:27〕. 침례를 받으신 지 3 년 반이 지난 A.D. 31년에 주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갈바리에서 드리신 그 위대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과거 4000 년간 하나님의 어린양을 가리켜 온 희생 제도는 끝났다. 표상(表象)은 실체(實體)를 만났고, 의식적(儀式的)인 제도의 모든 제사들과 제물들은 끝나게 되었다.”—GC 327-328.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A.D. 31년 봄에 참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 갈바리에서 드려지셨다. 그 때 성전 휘장이 둘로 찢어져서 제사 예식의 신성성과 그 중요성이 없어졌음을 보여 주었다. 지상의 제사와 제물을 그만 드려야 할 때가 왔다.”—PK 699.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기초요 생명이셨다. 성전의 봉사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표상했다. 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중보의 성격과 그의 사업을 나타내기 위해 세워졌다. 희생제도의 전체적인 계획은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해 구주께서 죽으실 것을 예표하였다. 여러 세대 동안 가리켜왔던 위대한 사건이 완성되는 때에 이 제사들의 효험은 없어지게 될 것이었다.”

 “모든 제사 제도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죽음에 넘겨 줌으로써 그분을 거절하는 일을 확정했을 때, 그들은 성전과 그 봉사에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것을 거절한 것이었다. 그것의 신성성은 떠나갔다. 성전은 파괴당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 날부터 희생 제물과 그와 관련된 의식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가인의 제사처럼 그것들은 구세주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죽임으로써 유대인들은 사실상 그들의 성전을 파괴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소 안쪽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갈래로 찢어진 것은 곧 마지막 크신 제물이 드려졌다는 것과 희생 제물을 드리는 제사 제도가 영원히 종말을 고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 DA 165.